경주월성 중앙지역 시굴조사 성과 첫 공개 ,통일신라시대 토기-기와-건물지-담장 확인
▲ © 월성과 경주시내 전경 신라가 멸망한 후 왕국으로의 기능을 상실했던 경주시 월성의 속살이 1천년 만에 드러났다. 발굴대상 부지의 상단 일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와 기와가 쏟아졌다. 또 기단과 초석(礎石·받침돌),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시굴조사를 시작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중앙지역(5만7천㎡)의 시굴조사 성과를 18일 공개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출토된 토기와 기와들이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것으로 확인돼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확인된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분포됐다.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자명의 평기와도 있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월성은 1914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가 성벽 하부 5개 층위를 발굴해 뼈화살촉과 뼈침, 탄화한 곡물, 토기편 등을 확인한 이래 주변에서 간헐적인 발굴조사가 있었지만, 100년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내부에 대한 실질적 조사라는 점에서 위미가 크다.
이번 조사의 품질 향상을 위해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해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할 예정이다.
정밀조사가 시작되면 발굴조사와 최신 IC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영상공학·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도시공학) 등 학제간 다양한 융합연구가 병행될 계획이다.
그리고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의 효율적인 갈등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굴조사 콘텐츠 관광자원화 연구, 현장중심 문화유산 교육과 활용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도 예정돼 있다.
월성은 신라 수도의 왕궁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만파식적’이 보관돼 있었다고 기록돼 있어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 강경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