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사도법관'은 없나
'과연 우리 시대 김홍섭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 16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사도법관(使徒法官) 김홍섭 50주기 추모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이미 50년 전 세상을 등진 선생의 삶은 이날 추모식을 찾은 후배 법관들에게도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듯 보였다. 법대(法臺) 앞에 앉은 피고인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재판에 임해야 한다며 '인간애'를 실천하고 청빈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선생의 일대기를 보면서 후배 법관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혹독하리만큼 스스로를 절제했던 선생의 삶이 후배 법관들에겐 부담으로 다가가는 것 같기도 했다. 선생은 늘 값싼 중고 양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 무짠지 반찬 도시락을 들고 출근했고, 박봉에도 일부를 떼어 사형수들에게 보내줄 책과 영치금으로 사용했다. 심지어 수도(修道) 생활에 지장이 된다며 처가에서 보낸 쌀가마니를 돌려보낸 일화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선생의 삶을 보고 '너무 힘들어서 싫다'고 얘기하는 후배 법관들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선생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살 수 있는 법관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러나 우리 시대에 맞는 법관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선생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의 지적처럼 그동안 막말 판사, 폭행 판사, 성추행 판사도 모자라 사채업자로부터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 현직 판사가 구속되는 등 초유의 사태가 잇따라 벌어진 사법부로선 이 시대에 어울리는 법관상을 재정립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심지어 익명으로 인터넷에 부적절한 댓글을 올린 판사는 법복을 벗었고, 아직도 법정에서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판사들이 적지 않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법부를 향해 선생은 대법원이 내놓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개선 방안보다는 법관 한사람 한사람이 처음으로 돌아가 스스로 삶을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날 특강을 했던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도 "'멀리 갈수록 되돌아온다'는 노자의 말처럼 순진무구한 인간성의 자기성찰을 선생은 (삶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문제는 우리도 어떻게 청렴과 내적 만족을 위한 삶을 살도록 결단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부단히 내면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이 수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어보려는 희망을 간직해 본 적이 있었고, 희망을 따라 꿈에 애태워했던 한 때가 있었소/그러나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 진정 꿈일 수 없고 잡히고야 말 표적이 어엿한 표적일 수도 없는지라/이제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오직 평상심으로서 발 앞을 살펴 실족의 화를 조심하고자 할 따름이오/나는 날개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안 것 같소
1965년 한 언론을 통해 남긴 선생의 최후 고백 '사람이란 날개가 없었다'는 수필이 후배 법관들에게 묵직하게 다가갈 때 법관 개개인이 이 시대에 맞는 김홍섭으로 거듭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