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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경북의 소리..
사회

경북의 소리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3/29 15:21 수정 2015.03.29 15:21
오직 청렴하게 하고 행함을 잊지 말라
▲     © 배동현 언론인옛날 소현령(簫縣令)이 선인(仙人) 부구옹(浮丘翁)에게 고을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다. 부구옹이 말했다. “내게 여섯 자로 된 비결이 있네. 사흘간 재계(齋戒)하고 오면 알려 주지.” 사흘 뒤에 찾아가니 세 글자를 알려주었다. 모두 ‘염(廉)’ 자였다. “청렴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는 재물에, 하나는 여색(女色)에, 나머지 세 글자는 무엇입니까?” “다시 사흘간 재계하고 오게나.” 사흘 뒤에 다시 갔다. “정말 듣고 싶은가? 나머지 세 글자도 염, 염, 염일세.” “정말 청렴이 그다지도 중요합니까?” “자네 거기 앉게. 청렴해야 밝아지네, 사물이 실정을 숨길 수 없게 되지. 청렴해야 위엄이 생기는 법. 백성들이 명을 따르게 된다네. 청렴해야 강직할 수 있네. 상관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되지. 이래도 부족한가?” 현령이 벌떡 일어나 두 번 절하고 허리띠에 염 자를 여섯 개 써서 즉시 길을 떠났다. 다산이 벗의 아들인 영암 군수 이종영에게 준 글에 나오는 고사다. 지난 지방선거 때 갖은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모아 집권당의 차기 공천까지 받은 현직 군수의 비리가 들통 나자 아예 위조여권으로 외국으로 달아났다 붙들린 사례가 있었다. 아침 신문을 열 때마다 선거를 먹칠하는 추잡하고 비열한 소식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때만 해도 도처에 나붙은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의 사진이 실례의 말이지만 모두 도둑놈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 곤 했다.  남의 잘못은 용서 못하던 검사들이 동료여검사를 비호하고 뇌물과 향응을 당연한 권리인 듯 받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면 비통하다 못해 허탈하다. “목민자(牧民者)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은 예나 지금이나 고혈과 진액을 짜내 목민자를 살찌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제 청렴은 무능과 동의어가 되었다.”고 다산은 목민관을 한탄했다. 옛말씀에 “재앙은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기며 병은 마음에서 생기고, 허물은 체면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 말이 번다하고, 마음에 주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이 거칠다” 다시 말했다.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이 자신을 굽히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없다. 교만한 사람이 포악하게 구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미워하니, 이보다 큰 손해가 없다.” 또 말했다. “남에게 뻣뻣이 굴면서 남에게는 공손하라 하고, 남에게 야박하게 하면서 남보고는 두터이 하라고 한다. 천하에 이런 이치는 없다. 이를 강요하면 반드시 화가 이른다.” 다시 말했다. “나를 찍는 도끼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찍었던 도끼이다. 나를 치는 몽둥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남을 때리던 몽둥이다. 바야흐로 남에게 해를 입힐 때 계책은 교묘하기 짝이 없고, 기미는 비밀스럽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도리어 저편이 유리하게 되어, 내가 마치 스스로 포박하고 나아가는 형국이 되면, 지혜도 용기도 아무짝에 쓸데가 없다.” 또 말했다.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굴며, 늙었다고 힘이 쪽 빠지고, 궁하다고 초췌해지는 것은 모두 못 배운 사람이다.” 어찌 해야 할까? 그가 말한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엄격하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는다.”또 말한다. “이름은 뒷날을 기다리고, 이익은 남에게 미룬다. 세상을 살아감은 나그네처럼 하고, 벼슬에 있는 것은 손님같이.”하라고 일렀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이 한 말이다. 최근 이 지역에서 일어난 노 정객의 부끄러운 행태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감에 있어 사람이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행함을 잊어서 탈이 난다고 보면 정확하다.  요즘 도처에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싫고 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 나름이겠지만 노추(老醜)가 그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끝이 없는 탐욕과 망상. 식언과 변신 이제는 눈 딱 감고 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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