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가 말하는 ‘아버지 차범근’국보급 행운
▲ ©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축구국가대표팀과 뉴질랜드 축구국가대표팀의 친선경기에서 차두리가 전반전을 마치고 은퇴식을 하고 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차두리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지난 31일 14년간의 국가대표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차두리(35·서울)는 선수 시절 내내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본의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차범근(62) 전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선수들이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그의 아성을 뛰어 넘은 선수는 없다.
'차붐'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고스란히 물러 받은 차두리의 목표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차두리에게 차 전 감독은 다른 세대에 존재하는 라이벌인 셈이었다.
차두리는 "항상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라이벌은 넘기 힘든 벽으로 바뀌었다.
차두리는 월드컵을 두 차례나 경험했고 대표팀에서도 70경기 이상 뛴 선수다. 무척 성공적인 축구 인생이었다.
다만 차 전 감독의 선수 시절이 이와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화려했을 뿐이었다.
차두리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 여러 기분이 들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두 사람은 뉴질랜드전 전반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 나란히 섰다. 차두리의 은퇴식이 진행되던 중 차 전 감독이 꽃다발을 들고 깜짝 등장했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던 차두리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공식석상에서는 마지막이 될 국보급 부자의 포옹이었다.
차두리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아버지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면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갖추신 분이다.
축구적으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선수였다. 집에 돌아가면 그런 아버지와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