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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바둑돌 200여점과 함께 쏟아진 신라여성 호화장신구..
문화

바둑돌 200여점과 함께 쏟아진 신라여성 호화장신구

서경규 기자 입력 2020/12/07 17:25 수정 2020.12.07 17:45
경주 쪽샘 44호분… “여성도 바둑 즐겼을 것 추정”
비단벌레 금동 장식·돌절구·공이 등도 같이 확인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굴된 무덤 주인공 착장 장신구 세트 모습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4년부터 추진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 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조합,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 돌절구‧공이, 바둑돌(200여 점), 운모(雲母: 화강암 가운데 많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의 하나로 도교(道敎)에서는 운모를 장기간 복용하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는 선약(仙藥)으로 인식. 50여 점) 등을 지난 달 한꺼번에 발굴했다.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들의 조합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며,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영락, 瓔珞: 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러한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됐던 디자인이다. 


이렇듯 장신구의 구성(조합상)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축조기의 최상층(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裝飾大刀: 꾸밈을 한 큰 칼)가 아닌 은장식 도자(刀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신장(身長)은 약 150㎝ 전후로 추정되는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 


금동관과 은허리띠 장식은 현재로선 정확한 문양과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추후 보존처리를 통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로 보아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춰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또다른 주목할만한 유물은 비단벌레 장식이다.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궤(副葬櫃, 부장품 상자) 상부에서 수십 점이 확인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며,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다. 


비단벌레(딱정벌레목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녹색 또는 금록색 광택이 나는 성충의 앞날개를 이용해 각종 장식에 사용)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어 이번 44호 피장자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 또한,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모두 마구에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장니(障泥 말다래: 말 탄 사람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돌절구와 공이는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副葬櫃) 안 철솥 바로 옆에서 함께 확인됐다. 돌절구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화강암을 연마해 위쪽에 얕은 함몰부를 만들었다. 돌절구의 크기(높이 13.5cm, 폭 11.5cm)와 함몰부의 용량(약 60ml)으로 보아 곡물을 빻는 실질적인 용도라기 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됐을 수도 있고,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사례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돌절구ㆍ공이 1묶음, 서봉총에서 공이 1점이 확인된 바 있다. 이외에 출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은(菊隱) 이양선 박사(1916~1999)의 기증 유물 가운데도 돌절구와 공이 1묶음이 있다.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土器群) 사이에 대략 200여점이 모여진 상태로 확인됐다. 크기는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등급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이후 시기로 넘어가면 7세기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인 용강동 6호분(170점)에서도 확인됐고, 분황사지에서는 가로·세로 15줄이 그어진 바둑판 모양의 전돌이 출토되기도 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대 기록에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가 될 것이다. 다만,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돼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번 피장자는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도 기대된다. 


지난 2014년부터 진행한 이번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분 발굴조사는 올해로 7년차이고, 현재 매장주체부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호석(護石무덤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주변에서 행해진 제사흔적, 봉분 성토방식,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다양한 지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중대형 적석목곽묘의 구조와 축조방식을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자료를 확보했고, 이번에 공개하는 유물을 통해서는 당대 신라 최고 지배층 사회의 장묘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조사에서는 부장궤에 겹겹이 쌓인 상태로 출토된 다양한 유물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시도할 것이며, 무덤의 하부구조와 호석, 적석부에 대한 해체조사를 통해 고분 전체의 구조와 축조과정을 완벽히 복원해 내고자 한다.  나아가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 쪽샘지구 44호 적석목곽묘의 학술조사에 있어서 철저한 고증과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정부혁신의 하나로 발굴과정의 실시간 공유, 정기적인 조사성과 공개, 대국민 현장설명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발굴조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쪽샘 44호분 조사결과 역시,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7일 오후 4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온라인 현장설명회와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통했다.     서경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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