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관계 개선 해법은 분리대응?
상호 과거사 부채...제로섬-마이너스섬 시각‘지배적’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피해 등 19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관련 문제가 재부각되고 있다.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둘러싸고 전략적으로 상호 부채(負債)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일관계를 제로섬 내지 마이너스섬 관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태도는 전에 없이 냉각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반한(反韓)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여론은 양국 정부간의 과거사 화해를 한층 더 어렵게 하고 있다.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우리정부 외교수장으로선 2011년 5월 이후 4년만에 일본을 방문한다고 하지만 관계 개선 쪽으로 물길을 바꾸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 등에 다소 전향된 자세를 보일 경우 정부가 탄력적 대응을 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여건에서 외교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와 타 분야를 분리해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는 분리대응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가 실리를 챙기는 전략으로 대일 관계를 푸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시점에서의 과거사 문제의 민감성과 폭발력을 충분히 주지해 위안부, 징용피해자, 독도 문제와 기타 현안의 분리 대응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외교 당국 간 공방을 가능한 자제함으로써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경제와 안보 등의 현안에서 한·일 간에 원활한 소통이 안 될 경우 양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구도"라며 "과거사나 독도 관련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그 영향이 타 분야로 파급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분리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사와 관련해 한·일 중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근본적인 해결에 집착하는 원칙론이나 문제를 방치한 채 기능 협력만을 강조하는 접근법은 비현실적"이라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일 압박을 유지하면서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의 도발 수위에 상응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에서도 양국 정상회담과의 분리대응을 제안했다.
그는 "한·일 간의 정치적 신뢰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떠나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각료회의 정례화, 차관급 전략대화 강화, 비공식 대화 등 다양한 대화채널을 활성화해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출신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도 "과거사나 독도 문제는 사안의 성격상 완벽한 해결이 어려우므로 이런 문제들로 대일외교 전체에서 운신의 폭을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분리대응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과거사나 독도 문제에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되 안보나 경제 분야에서는 실용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분리대응에 대한 국내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처럼 따질 것은 분명하게 따지는 한편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회담 개최에 있어서도 "현재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나 이런 대일 압박에 의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위안부 문제와 정상회담을 분리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분리대응을 주문했다.
김영근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부교수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정경 분리 원칙을 제시했다.
김 부교수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현재 한일 외교통상관계에서의 대립과 협력의 전개에 지나치게 익숙해져있는 듯하다"며 "정경분리 정책으로 한일관계 악화가 양국의 경제·사회·문화 등 다른 분야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경분리 정책 추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면 한·일 대화 과정에서 돌발적인 외교교섭이 아니라 일련의 정책결정과정이 일반화됨으로써 효과적인 정책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교과서문제를 포함한 역사인식, 위안부 문제 등 민감한 정치적 사안보다 우선 용이한 한일 경제협력 대화채널을 유지 확대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경색된 한일관계에서 벗어나 양국간 실질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박근혜노믹스와 아베노믹스가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정치 이슈보다 사회·문화·경제분야를 우선시하는 정경분리 또는 선경후정 전략을 바탕으로 한일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