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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잔인한 사월이여 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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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잔인한 사월이여 어서 가라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4/26 16:33 수정 2022.04.27 08:54

정 여 산<br><자유기고가>
정 여 산
<자유기고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부활 신앙과 재생 기쁨을 상실한 서구 문명의 비극성을 노래한 TS 엘리엇 ‘황무지’. 한국 현대사에서 자주 회자되어 온 서사시중 하나다.

4월에 유난히 역사적 비극이 많다. 제주도 양민 학살(3일), 세월호 침몰(16일), 김주열군 얼굴에 박힌 최루탄이 국민적 분노로 이어진 4.19 혁명(19일), 포항제철소 제강공장 쇳물이 흘러 공장 전체가 올 스톱이 된 사건(24일) 등이 그 것이다.

1977년 4월 24일 제철소 크레인 기사가 야간 근무 도중 졸음 때문에 쇳물을 잘못 부어서 제강공장 각종 배선이 완전히 소실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박태준 사장은 해당 크레인 기사에겐 징계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중간 간부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당신들은 잠도 안 자는가. 야간 근무라면 출근하기 전에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 할 텐데 그럼에도 사고가 났다면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당신들은 부하 직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는가’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다.

TJ(박태준 회장 애칭) 관련 필자 개인적 기억으로 1992년 4월 대통령 출마 선언문 작성 참여가 있다. 당시 기라성 같은 포항제철 경영진들이 검토하던 ‘출사표’ 작성 실무에 관여한 바 있었는데, 이를 누군가 공영방송 9시 뉴스에 제보하여 정치 행보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만일 그 때 TJ가 민주자유당 경선에서 YS(김영삼 대통령)와 경합을 했더라면, 그래서 TJ 대통령이 나왔더라면 한국 현대사는 지금 어떤 로드맵을 그리고 있을까. 적어도 IMF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개인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1991년 9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무르익어갈 즈음 불리해진 상대 진영에서 TJ 모친 일본 여성설을 유포했다. 반증 기사를 게재하고자 유력한 여성 월간지 데스크 일행을 안내하여 TJ 고향 경남 기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갑, 홍보실은 을이다. 그 데스크 소개(홍보실 햇병아리 입장에선 지시로 들렸다)로 그 부서 여기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 기분으로 조직을 구하기 위해. 덕분에 지금까지도 갑 마누라 모시고 영원한 을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게재된 기사는 가짜 뉴스를 때려잡는 위력을 발휘했다.

1997년 포항 북구 국회의원 선거는 포항의 정치구도를 짚어보게 된 생생한 공부가 되었다.

2002년 MBC 라디오 격동 50년(극본 김문영) ‘철강제국 고독한 황제’편 제작지원 업무로 TJ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 때 들은 이야기와 자료들로 ‘(철 황제가 아닌) 인간 박태준’을 써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물론 그 전에 기업이나 지자체, 어디든 박태준 철학을 필요로 하는 곳 돕는 게 먼저다.

4월이 왜 잔인한지 생각하며 라흐마니노프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이다. 배뇨량 만큼 수분을 보충하고 기계적으로 소파에 앉는다. 페이스북을 열어 ‘좋아요’와 ‘답글’을 단다. 시애틀, 뉴욕, 호주 온라인 친구들에게 공감하는 ‘댓글’도 챙긴다. 재감상 리스트에 갈무리해 둔 귄터 그라스 원작 ‘양철북’영화를 구매했다. 1979년도 서독 개봉 그 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1980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폭력과 문란한 성도덕, 난해함 등 어른 세상에 환멸을 느낀 오스카는 세 살 때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고 계단에서 몸을 날린다. 돌이켜 보면 내 삶도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 것’같은 망상에 종종 사로잡힌다.

3월 말 승진 심사에 미끄러진 탈락자들은 죽을 만큼 4월이 잔인하다. 필자 또한 그러한 좌절의 시기가 길었다.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 자존감 상실, 이유 없는 적개심 등이 화창한 봄날에 난무하는 게 아이러니다. 22일 발표된 지자체 선거 ‘공천 컷오프 학살’ 희생자들에게 4월은 최악으로 잔인한 달이다. 후보 본인도 그렇지만 열성 지지자들은 심한 허탈감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운 모양이다. SNS 포스팅 시간을 보면.

공천 불복을 해본다지만 재심이 받아 들여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엎어진 김에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현명하다. 시장 선거에 떨어지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례는 너무 많다. 괜한 물의로 중앙당 핵심 관계자들 눈 밖에 났다간 2024년 4월도 물 건너 가게 된다. 차라리 ‘쿨 하게’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어필해 두고 훗날을 기약하는 편이 낫다. 새옹지마는 정치의 필연 아니던가.

‘한 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건 어쩌면 평범한 진리다. 검사도 되는 마당에 경찰이 안될 이유가 있을까. ‘시장에 목숨 걸다가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잃게 되는’ 어리석은 일은 피해야 한다. ‘시탐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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