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일간경북신문

포토에세이 : 어느저녁..
문화

포토에세이 : 어느저녁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6/16 16:56 수정 2022.06.19 14:18

어스름 속 강한 불빛에 반사적으로 손차양을 만든다. 오징어 채낚기 배에 집어등이 켜졌다. 조업 나갈 준비를 하는 걸까, 선원의 몸놀림이 재빠르다. 집어등이 켜지자 동빈 항의 가로등 빛이 무색하게 되었다. 강렬한 것의 주위는 묻히기 마련이다.
깜깜한 바다의 집어등은 오징어에게 어떤 의미일까? 거침없이 달려들어 미끼도 없는 낚싯바늘에 걸려든다. 불 밝힌 집어등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딴 세상 같은 것일지도. 무모한 듯 보이지만, 원하는 것을 쫓아가는 건 생명체가 가진 본능이 아닌가.
한때, 바닷가에 작은 횟집을 열었다. 어부의 딸이었지만 회를 떠보지도 식당을 해 본 적도 없는 완전 초보였다. 그때의 상황은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데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던 얼뜨기 부부의 무지가 배짱이 되었다. 그런 초보 횟집 주인에게 손해를 대가로 지불한 경험들은 수두룩하다. 수족관의 산소나 수온조절 부터 회를 써는 방법까지 어디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빚을 안고 시작한 젊은 부부에게 수족관의 죽어 나가는 물고기들은 절망을 보탰다.
특히 오징어는 까다롭고 공격적이었다. 다른 활어들과 같은 수족관에 넣어 두었다가 큰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오징어끼리 수족관에 넣어도 수가 많다 싶으면 다음날 공처럼 뭉쳐진 오징어들을 보게 된다. 힘이 떨어진 오징어는 빨판을 다른 오징어의 몸통에 붙여 버린다. 가라앉는 오징어의 빨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다 결국 같이 가라앉고, 또 다른 오징어에게 빨판을…. 밤새 그런 반복들이 아침이 되어 허연 오징어 덩어리를 건져내게 했다. 그 오징어들을 줄에 매달아 해풍에 말린다. 몸통이 뜯긴 오징어는 횟집 주인의 씁쓸한 안주가 되었다. 참 고단했던 시절의 기억이다. 한동안, 그 마을을 지나갈 일이 생기면 일부러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기억은 뇌 속에 보관되고, 추억은 가슴에 저장되는 것이라고. 또 누군가는 어느 때의 기억이 아름다웠으면 추억으로, 고달팠으면 경험이라 표현한다나. 볼일을 끝내고 와보니 채낚기 어선은 보이지 않는다. 먼 바다로 나가 오징어 떼를 찾고 있을 것이다.
집어등 불빛만큼이나 멀어진 회상들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었다 말 할 수 있을까…. 기억이거나 경험이거나 추억이거나 그때의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 결과가 좋았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살아온 내 시간이 부질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밤바다의 공기에 살갗이 기지개를 켠다. 또 다른 기억이 만들어질 지금을 뚜벅뚜벅 걷는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저작권자 © 일간경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