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일간경북신문

포토에세이:비밀의 화원..
문화

포토에세이:비밀의 화원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7/28 16:57 수정 2022.07.31 14:33

태양에 달구어진 아스팔트는 열기를 뿜어냈다. 눅진해진 아스콘에서는 메케한 냄새가 올라왔다. 여름날 하굣길의 더위에 아이들은 당연한 듯 바닷가 길을 택했다. 마을로 가는 도로를 벗어나면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바다의 빛은 투명한 하늘과 모래와 조개의 색깔로 드러났다. 한적한 바다의 풍경 안에 해당화 군락도 있다. 진분홍의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붉게 익어갔다. 둥글고 단단한 껍질 안으로 씨앗을 빼곡하게 품었다. 반을 잘라 씨앗을 꺼낸 열매는 살짝 단맛이 돌았다.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이런저런 추억담을 나누다가 문득 해당화 군락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그곳에 해당화 구경하기도 어렵단다.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휴일의 오전을 느긋하게 보내다가 집을 나섰다. 한적하던 해안은 편의점과 카페가 들어섰다. 그늘막을 친 평상도 줄지어 있다. 솔방울을 주워 소꿉놀이하던 솔밭은 갖가지 장비를 갖춘 캠핑족들이 점령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솔밭과 해안 초소였던 자리를 지났다. 도로가 났지만 굽은 해안선으로 대충 그곳을 짐작한다. 해당화 군락지 조성사업 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해당화는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는 말이 더 적당하겠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가 그리 만든 것일까, 달라지는 자연환경의 영향일까? ‘그래도’라던 막연한 기대는 아쉬움을 넘어 실망을 남겼다.
기억 속의 비밀 화원이 그대로이길 바랐던 오만한 욕심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맨발로 모래 위를 거리낌 없이 뛰어다니던 아이가, 모래가 묻는 것이 귀찮아 장화를 챙겨 신은 중년이 되지 않았는가. 모래사장을 걷는 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모래 위로 낮게 뻗은 줄기에 발이 걸렸다. 줄기마다 보라색 꽃이 피어있다. 몸을 낮춰 들여다보니 싱그러운 향기까지 난다. 그제야 해당화가 사라진 자리에 순비기나무가 군락을 이룬 것을 눈치챘다. 벽자색의 잔치판이 황홀하다. 실망 가득하던 마음을 순간 달뜨게 한다.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맞이하고 떠나보내고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연이 다가오고 머무는 시간이 다를 뿐.
먼 훗날, 또다시 비밀의 화원을 기억할 때 나는 말하겠지. “어느새 해당화 군락이 없어지고,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마법처럼 순비기나무 군락이 생겼어. 보라색 꽃이 가득한 바다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저작권자 © 일간경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