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백씨는 단일 성씨로 세계대회를 개최하는 유일한 문중이다. 한국시조 백우경은 중국 당나라 소주사람으로 황제 헌원의 후손이며 시성 백낙천과 사촌지간이다.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고 780년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상의 벼슬에 올랐고 경주 자옥산 아래인 안강 옥산리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포항 침촌 입향조 이현은 조선중엽 자헌대부 의정부 우참찬을 지낸 문경공의 현손이다.
포항 참판공종회는 지난 2007년 75억원의 문중 예산으로 침촌문화회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이현 공이 포항에 터를 닦은 북구 장성동 침촌지구에 자리를 잡았다. 대지 1300여평, 연면적 790여평의 5층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서예, 다도, 민화 등 문화교실을 운영하는 등 그동안 포항시민들의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해 왔다.
포항 참판공종회는 연간 4천만원의 예산으로 매년 20여명의 남녀 종원들이 중국에 있는 세계 백씨 시조묘 참배를 지원하고 있다.
* 헌성비(獻誠碑)
문경공(文敬公, 諱: 仁傑) 휴암선조(休庵先祖)의 심오(深奧)한 청백리(淸白吏)정신과 성리학(性理學)의 대가(大家)로서 공(公)은 바른말은 참은 적이 없어 평생(平生)을 살아오셨기에 이를 숭상(崇尙)하여 오던 차(此)에 포항(浦項)의 참판공(參判公)종회(宗會)에서 메말라가는 이 세태(世態)에 감우(甘雨)가 되어 헌성금(獻誠金) 3억원을 쾌척(快擲)하여 휴암묘역(休庵墓域)에 역사적인 전사청(典祀廳)을 건립하게 이르렀다.
참판공(參判公, 諱: 以玄)은 문경공 휴암선조(文敬公 休庵先祖)의 현손(玄孫)으로서 一六二五年 을축(乙丑)에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月籠面) 덕은리(德隱里)에서 탄생(誕生)하였다. 공(公)은 고조(高祖)의 자질(資質)과 성품(性稟)을 그대로 이어 받아 성고지원(性高志遠)하고 지심려광(智深慮廣)하며 호학불권(好學不倦)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공극겸(極恭極謙)하여 국가동량(國家棟樑)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當時) 사화(士禍)가 끊이지 않았고 당쟁(黨爭)으로 조정(朝廷)이 불안(不安)하여 사림(士林)의 희생(犧牲)이 많아 백방(百方)으로 고구(考究)하던 끝에 어지러운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으려 고토(故土)를 떠나 영동(嶺東) 용인을 거쳐 영남(嶺南) 달성(達城)에 일시 머물다가, 흥해군(興海郡) 동상면(東上面) 침촌리(針村里)에 입향(入鄕)하여 우거(寓居)하면서 수기애물(修己愛物)하고 회인불권(誨人不倦)의 정신(精神)으로 인근 사람들을 추중(推重)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사람을 가르치고 수신제가(修身齊家)하였기에 침촌(針村)에서 후예(後裔)가 번성(繁盛)하므로 점차 백문(白門)의 집성촌(集姓村)이 이루어졌다.
참판공(參判公)은 一六九九年 기묘(己卯) 향년(享年) 七十五 세에 흥해군 동상면 침촌리에서 서거(逝去)하여 죽전곡(竹田谷) 해좌(亥坐)에 예장(禮葬)되었으며, 一八五二年 철종(哲宗)三年 임자(壬子)에 통훈대부(通訓大夫) 충의위부호군(忠義衛副護軍)에 증직(贈職)되었고 一八九四年 고종(高宗)三十一年 갑오(甲午)에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이후 도시계발계획에 의하여 二○一四年 350여년간 예장(禮葬)되어 있던 죽전곡(竹田谷)을 떠나 포항시 북구 송라면(松蘿面) 광천리(光川里) 산 37-1에 조성된 참판공종중(參判公宗中) 묘역(墓域)에 이장(移葬)되었다.
참판공종회(參判公宗會)는 입향조(入鄕祖)이신 참판공(參判公) 이현(以玄)선조의 얼을 되살리고 숭조돈종(崇祖敦宗)의 기치(旗幟)아래 물려받은 유산(遺産)을 보존하여 포항 지역사회(地域社會)의 문화전당(文化殿堂)으로 일익을 담당하면서, 전종원(全宗員)이 모여 참제(參祭)하는 문경공선조(文敬公先祖)와 참판공선조(參判公先祖)의 영당(影堂)에 一○○호(號)의 영정(影幀)을 모셔 춘추에 제향(祭享)을 받드는 침촌문화회관이 존치(存置)하고 있음은 수원백씨 전종원의 자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판공종회 전종원과 고문, 회장을 위시한 임원께 감사드리고 선조(先祖)의 음덕(蔭德)이 충만(充滿)하기를 기원드리며, 이에 그 뜻을 헌성비(獻誠碑)에 새겨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고저 한다. 김재원기자
백남도 회장 대담
* 회장은 언제 되셨는지?
참판공종회 회장은 지난 2019년부터 3년의 임기를 했고 이후 한번 연임을 해 총 6년간 했습니다. 앞서 부회장은 9년간 했고 사파인 필성종회 회장도 8년간 역임했습니다.
* 회장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가장 큰 성과는?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심적 고통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종원들의 피해가 없도록 매일 출근을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신경을 썼는데, 무엇보다 안 좋은 일 없이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임기를 마치면서 아쉬운 일이 있다면...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섬기며 후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 스스로 생각할 때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 회장을 그만두는 소감은?
문중이 번창하길 바래서 행사도 많이 하고 열심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별다른 아쉬움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별탈없이 마치게 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손조와 자손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져 감사합니다.
* 후임 회장이나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상의 음덕을 잘 섬기고 기리며, 문중화합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