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만든 분열…대화 의지는 70%
국민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극심한 갈등 인식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는 여전히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정치권의 책임 있는 역할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는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통합을 위한 5대 사회갈등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합위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7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2%포인트)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보수-진보’ 간 갈등을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92.4%로 5대 사회 갈등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어 ▶소득계층 간 갈등 77.3% ▶세대 간 갈등 71.8% ▶지역 간 갈등 69.5% ▶젠더 간 갈등 61.0% 순으로 나타났다.
젠더 갈등의 경우 전체 평균은 가장 낮았지만, 18~29세 청년층에서는 75.5%가 ‘심각하다’고 응답해 전 연령대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같은 연령대에서 보수-진보 갈등(89.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성별로는 여성(64.5%)이 남성(57.5%)보다 젠더 갈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갈등’을 묻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59.5%가 ‘보수-진보’ 갈등을 꼽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소득계층 간 갈등 17.6% ▶젠더 갈등 9.2% ▶지역 갈등 6.9% ▶세대 갈등 6.8% 순이었다. 사회 갈등을 접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는 분노(26.6%)가 가장 많았고, 혐오(22.0%), 슬픔(16.4%)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70.4%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답해,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소통의 여지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보수-진보 갈등이 매우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지만, 동시에 국민 다수가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대화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국민통합위는 앞으로도 ‘국민 대화기구’로서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통합에 대한 정치의 책임이 무겁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권 관계자는 “국민 10명 중 9명이 이념 갈등을 심각하게 느낀다는 것은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증폭시켜 왔다는 반증”이라며 “정쟁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민생과 통합 중심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권 관계자는 “분노와 혐오가 사회 전반에 확산된 현실을 정치권이 직시해야 한다”며 “상대를 악마화하는 언어와 진영 논리를 먼저 내려놓지 않으면 통합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역 갈등 인식이 70%에 육박한 점을 두고 TK(대구·경북) 정치권에서는 “수도권 중심 정치 구조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북 지역 한 재선 의원은 “지역 갈등이 여전히 주요 사회 갈등으로 인식되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이 말뿐이었다는 방증”이라며 “동서·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해소가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대화 의지’를 보인 만큼, 정치가 먼저 타협과 숙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갈등을 동원하는 정치가 아닌,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분열을 키운 정치가 멈추지 않는 한, 국민이 내민 ‘대화의 손’은 끝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김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