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덕초등학교 정문 앞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3년 개교한 문덕초등학교는 현재 31학급, 학생 618명, 교원 40명이 재직하는 오천지역의 거점 초등학교다. 하지만 수백 명의 학생이 매일 이용하는 학교 정문 앞 통학로에는 보행자를 위한 안전한 보도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어린이들이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이용해 등하교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하교 시간에는 학원 차량과 학부모 차량, 일반 차량까지 한꺼번에 몰리면서 학교 앞 도로가 혼잡해져 어린이들이 차량 사이를 피해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인데 ‘보행 공간’은 어디에
현행 도로교통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교통안전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12조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교통안전시설 등을 우선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32조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정차 및 주차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다.
문덕초 정문 주변을 직접 확인한 결과,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행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차량 통행 공간과 보행 공간이 사실상 뒤섞여 있는 구간이 확인됐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어린이들이 차량과 가까이 붙어 걸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학교 정문 인근에는 차도 방향으로 2m 이상 돌출된 화단과 담장이 보행 공간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 부지 일부를 활용해 보도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하교 시간에는 불법 주·정차까지…“아이들이 차량 사이로”
문제는 보행공간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하교 시간대에는 어린이를 태우러 온 학원 차량과 학부모 차량 등이 학교 주변에 몰리면서 통학로 주변의 차량 혼잡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불법 주·정차 차량 사이를 통과하거나 도로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차량과 어린이 간 접촉사고 위험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차량을 피해서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들 “해마다 민원…달라진 것은 없다”
문덕초 학부모회 홍연미 회장은 그동안 학부모들이 관계기관에 지속적으로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아이들의 안전이 매일 위협받고 있어 학부모회 차원에서 해마다 교육청 등 관계기관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마다 반복되는 민원에도 제대로 된 변화가 없어 학부모들의 불신과 배신감이 크다”며 “아이들에게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행정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특히 단순한 단속 강화보다는 어린이들이 차량과 분리돼 걸을 수 있는 물리적인 보행공간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항교육지원청 “위협 상황 인지하지 못했다”
더욱 논란이 되는 부분은 관계기관의 현장 파악 여부다.
포항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취재 과정에서 문덕초 통학로 문제와 관련해 “현재까지 해당 통학로의 위협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밝혔다.
수년간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는 주장과 교육지원청의 현장 인지 여부가 엇갈리는 셈이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앞으로 포항시와 협의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제 와서 협의하겠다는 답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실질적인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화단·담장 정비하면 보도 확보 가능”…현실적 대안 제시
현장 취재 결과 학교 정문 주변의 돌출된 화단과 담장 일부를 정비해 보행공간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학교 측과 관계기관이 부지 및 시설물 현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불필요하거나 이전 가능한 시설을 정비하고, 확보된 공간에 정식 보도와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이다.
단순히 등하교 시간대 차량 단속에 의존하는 것보다 어린이와 차량의 동선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통학로 개선책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정호 도의원 “행정·재정적 조치 검토”
현장 사진과 영상 자료를 전달받은 경북도의회 박정호 의원(교육분과 부위원장·포항 오천)은 직접 현장을 확인한 뒤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권 보장은 선택이 아니라 법적·도덕적으로 반드시 보장돼야 할 과제”라며 “현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조치를 취하고 문제점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청과 포항시, 학교가 각각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통학로 개선을 위한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천읍도 현장 확인…“적극행정 펼치겠다”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포항시 오천읍도 현장을 확인했다.
박상근 오천읍장은 현장 확인 후 “교육청 등 관련 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해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오랜 기간 이어진 학부모들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행정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포항시와 교육당국이 실제 현장조사와 시설 개선에 착수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표지판만 세우는 곳이 아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핵심은 결국 어린이가 안전하게 학교까지 걸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을 세우고 차량 단속을 강화하더라도 어린이가 걸어갈 보도 자체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보호구역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특히 문덕초등학교는 6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니는 지역 거점 학교인 만큼 통학로 안전 문제를 단순한 학교 주변 민원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관계기관은 우선 ▲통학로 정밀 현장조사 ▲등하교 시간대 차량 흐름 조사 ▲보도 설치 가능 구간 검토 ▲돌출 화단·담장 정비 가능성 검토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 ▲학교·교육청·포항시 간 협의체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차도를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차량이 아이들을 피해 운행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정한 본래 목적에 더 가까운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문덕초등학교 정문 앞 통학로가 더 이상 학부모들의 반복되는 민원으로만 남지 않고, 실제 보행공간 확보와 시설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대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