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레스터 시티 사령탑으로 임명되자, 개리 리네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표현했다. 리네커는 레스터 시티 레전드이자 TV 해설가다.
진심이냐고 물을 만큼 의심어린 시선이 가득했다. 그럴 만했다. 짧지 않은 지도자 경력에도 1부 리그 우승 경험은 없었다. 여러 클럽을 전전한 결과 '저니맨'이라는 불명예스런 수식어도 따랐다.
하지만 65살의 노회한 감독은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형 사고를 쳤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약체로 꼽히는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창단 132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다.
전 세계가 열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라니에리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한다는 여론까지 일고 있다. 감독 생활 30여년 만에 짜릿한 뒤집기 한판을 신고한 셈이다.
라니에리 감독은 1951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AS로마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1973년 꿈에도 그리던 AS로마에 입단했다.
하지만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경기에 나선 것은 고작 6번에 불과했다.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결국 1974년 이탈리아 세리에B의 칸타사로로 팀을 옮겨 수비수로 활약한다. 이후 카타니아, 팔레르모 등에서 뛰었고 1986년 은퇴했다.
현역 생활을 마친 뒤 곧장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팀을 이끌었으나 1988년부터 세리에C1(3부 리그)에 머물던 카타니아의 지휘봉을 잡고 본격적으로 지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3부 리그에 머물던 카타니아를 2년 만에 1부 리그까지 승격시켰다. 이후에는 나폴리 감독을 맡아 팀을 리그 4위에 올려놨다. 특히 훗날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발돋움한 지안프랑코 졸라를 1군 무대에 불러들여 적극 기용했다.
1993년부터는 피오렌티나 사령탑에 부임했다. 1993~1994시즌 팀을 세리에A로 승격시켰고, 다음 시즌에는 이탈리아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해외 무대로 눈을 돌려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등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 잉글랜드 신흥 강호인 첼시를 이끌었다. 그러나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가 된 이후 다미안 더프, 조 콜, 에르난 크레스포 등 대대적인 선수 영입을 벌이고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2003~2004시즌이 끝나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곧장 발렌시아로 복귀한 라니에리 감독은 재기를 노렸으나 1년 만에 경질됐다. 이후에도 파르마, 유벤투스, 로마, 인터 밀란 등 유수의 클럽을 지휘했으나 정규리그 우승은 요원했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프랑스 무대로 나섰다. 2부 리그에 속한 AS모나코를 맡아 곧장 1부 리그 승격을 이끌고, 이듬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재계약에 실패해 다시 무직신세가 됐다.
그리스 대표팀 시절은 라니에리 감독의 '흑역사'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처음으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으나 4경기에서 1무3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4개월 만에 경질됐다.
특히 2016년 유럽선수권대회 예선에서는 인구 5만명에 불과한 페로 제도에 안방에서 패배해 두고두고 비난에 시달렸다. 훗날 스스로 "내가 그리스에서 쫓겨난 그 라니에리가 맞다"고 언급할 정도로 본인에게도 큰 상처로 남았다.
감독으로서 전성기가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레스터 시티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냉소적인 시선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2015~2016 프리미어리그 36경기에서 22승11무3패(승점 77)를 기록했고, 지난 3일 일찌감치 정규리그 챔피언에 등극했다.
생애 첫 1부 리그 우승컵이었다. 우승의 동반자는 첼시도 유벤투스도 인터 밀란도 아닌 레스터 시티였다. 올 시즌 레스터 시티의 목표는 1부 리그 잔류였다. 시즌 전 도박사들이 예측한 레스터 시티의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이었기에 지도자 라니에리의 능력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고국인 이탈리아는 열광했다. 이탈리아 유력지인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킹 클라우디오"라는 기사로 라니에리 감독을 칭송했고, 바티칸 신문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그를 리차드왕 3세에 비견했다.
9일에는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에 주어지는 '엔조 베아르조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서 카를로 타베치오 이탈리아축구협회 회장은 "라니에리 감독이 이탈리아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길 바란다.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일이 될 것"이라며 밝히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던 라니에리 감독이다. 겸손함을 배웠고, 자신감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같이 말한다.
"클라우디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있는지 알고 있느냐. 아주 많다. 결코 모두가 알렉스 퍼거슨,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가 될 수 없다.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