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안무가' 김보람(33)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이끌고 있다. '애매모호한'(ambiguous)이라는 뜻을 지닌 컴퍼니 대표지만 개성이 넘쳐난다. 뒤로 넘겨 묶은 머리와 검은 수염,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스타일도 예사롭지 않다.
2000년대 초중반 가수 엄정화·이정현·조성모 등의 백업 댄서로 일한 그는 현대무용가로 변신했다. '인간의 리듬'으로 한국춤비평가회 2014 작품상을 받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힙합과 비보잉은 물론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위트와 재기가 넘친다.
인간의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 몸짓들이다. 덕분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현대무용계 가장 뜨거운 컴퍼니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산문화재단의 상주 예술단체가 됐다.
최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보람은 "안산은 서울과 무용 시장과 활동이 다르다"며 "서울은 페스티벌 위주의 공연이 많은데 안산에서는 자체 제작 공연이 많다 보니 순수 일반 관객이 많더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무용에 관심이 있는 분이 많이 온다. 근데 안산은 일반 시민들이 공연장을 찾아온다."
지난달 말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 펼친 올해 첫 기획공연인 '애매모호한 밤'에서 특히 체감했다. 무용수들의 고충 등을 다룬 이 작품을 본 학생들이 관객과 대화의 시간에 "우리들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묻더라"고 전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안산 지역의 무용 문화 활성화를 위해 매 공연마다 관객과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춤은 어떻게 추게 됐고 어떤 점이 힘든지 묻더라. 요즘 아이들이 현실적이라는 걸 느꼈지. 자기 꿈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 안산에서 공연을 통해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김보람은 안산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거처도 서울에서 최근 현지로 옮겼다. "상주 단체가 되니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은다. 우리로 인해 안산에 무용을 관람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상주 단체로서 성공하는 것이다. 무용에 대한 고정 관객을 만들고 싶다."
한국현대무용협회의 '제35회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 2016'(18~29일 대학로 일대)를 통해 선보이는 '봉숭아'(21일 오후 5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지난해 말 안산에서 먼저 선보여 호평 받은 작품이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다원예술작품 '예술을 위한 조화' 중 생명의 탄생 장면을 발전시킨 작품이다. 신비로운 여성들의 세계를 그린다. 원초적인 몸과 움직임의 아름다운을 표현한다. 5명의 무용수들은 수영복, 가죽재킷, 한복, 잠옷, 원피스 등을 입고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성의 존재를 다루고 싶었다. 순수하고, 신비로운 모습들."
예상치 못한 몸짓들로 엮은 김보람의 안무는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무용수들에게 고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무용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몸짓들이다. "무용수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한다. 안무 작업이라는 것이 안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는 김보람이지만 최근 슬럼프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빠듯한 스케줄 때문이다. '봉숭아' 공연에 이어 6월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신작 '언어학'을 선보인다. 6월 11, 1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춤 경연 대회 '댄스 엘라지'에도 참여한다. 올해 설립 8년을 맞이한 컴퍼니의 활동 방향에 대한 고민도 겹쳐졌다.
"춤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들도 추상적이지만 하는 사람들도 추상적일 수 있다.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데 계속 작품을 만들면 지치게 된다. 우리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하는 단체다. 내가 어중하게는 잘 하지 못해서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의 조절이 필요하다."
백업 댄서 시절 김보람의 꿈은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클 잭슨, 마돈나의 백댄서가 되는 것이었다. 올해 초 백댄서가 아닌 안무가 자격으로 미국에 가는 행운을 누렸다. 북미최대의 공연예술마켓인 뉴욕 APAP에 '인간의 리듬' 쇼케이스 공연으로 참가한 것이다. 2014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팸스 초이스'에 선정된 이후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이 체결됐다.
"2차례 쇼케이스를 했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안무가로 막상 미국에 가니까 별거 많지 않더라. 그런데 미국 시장의 진입이 쉽지 않다. 앞으로 에이전시랑 계속 고민을 해나가기로 했다."
최근 공연연출가 고선웅과 배우들, 국립극단이 협업한 연극 '한국인의 초상'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와 협업 등을 진행했지만 연극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협업이라기보다 배워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정말 공부가 많이 됐다. '한국인의 초상' 이후 '애매모호한 밤'을 작업할 때 대사라는 걸 넣어봤다. 새로운 소통 방법을 익혔다. 몸으로만 해오다가 텍스트가 가진 힘을 느낀 것이다."
물론 몸을 사용한고 그걸 느끼는 것이 춤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대중도 일상에서 창작 활동을 한다고 여겼다. "숨을 쉬는 것, 타자를 치는 것 역시 섬세함이 요구되고 몸에서 느끼는 것이다. 모든 일이 신성한 작업인 셈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대단한 걸 발견하는 것이 창작이다. 나는 춤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