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통해, 젊은 독자들이 '과거의 진실'에 눈 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에 대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 준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작가로서 더 없는 영광이다."
작가 한수산(70)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당하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폭된 조선인의 이야기를 그린 '군함도'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7년이다.
1989년 가을 일본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읽은 뒤였다. 1990년 여름부터 취재를 시작해 1993년 중앙일보에 '해는 뜨고 해는 지고'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가 포기한 뒤, 2003년 다시 '까마귀'(총 5권)로 제목을 바꿔 완성한 뒤 출간했었다. 이후 2009년 '까마귀'를 3분의1 가량 축소하고 '군함도'로 제목을 변경해 일본어 번역판을 내놓고, 추가 취재를 거쳐 올해 5월 '군함도'(총 2권) 완결판을 완성했다.
27년간 이 소설에 매달린 이유는 '군함도'가 지금까지도 온전히 청산되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담고 있기때문이다.
군함도(軍艦島)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하시마(端島)의 별칭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로 불린다. 1940년대 조선인 500~800여명이 이곳으로 강제징용돼 착취당했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피폭당했다. 이런 비극과 관계 없이 군함도는 일본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는 명목 하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소설 '군함도'는 군함도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노동착취, 군함도 탈출과 노동쟁의, 일제의 잔인한 강제진압, 군함도를 탈출한 이들이 다시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폭당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이 과정을 통해 한 작가는 '사람'이고 싶었던 징용공들의 일상과 인간적 면모, 역경 속에서도 피어난 그들의 꿈과 사랑을 담아낸다.
한 작가는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군함도'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일제 강점기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27년을 보냈다. 그들의 증언이 말하는 체험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식민지 범죄의 피해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군함도'가 우리 선조들의 고난과 통한의 역사를 그린, 과거를 이야기하는 역사소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작가는 "'군함도'는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고 했다. 이 소설에는 무수한 '오늘'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작가는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허위, 비핵 평화운동의 문제, 피폭 후유증,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살상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은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일 뿐"이라며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수면 아래 잠겨있는 죄악과 진실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마주하는 이정표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는 '군함도'가 역사적 분노가 분노에서 그칠 게 아니라 결국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이른바 과거사로 불리는 역사를 다룬 소설과 영화, 음악이 꾸준히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작가는 "우리가 우리의 과거사를 문화로조차도 기억하지 않을 때 무엇으로 어제를 기억하고 그것을 넘어 내일로 넘어가겠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