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대적·문화적 배경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식물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에서부터 근대의 린네와 페히너,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찬드라 보즈까지 이런 믿음을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확고한 정량적 데이터에 의거해 '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진보한 생물체'라고 주장한 학자는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은 저서 '식물의 운동력'에서 "어린뿌리의 말단은 매우 민감해서, 인접한 다른 부분의 운동을 지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의 어린뿌리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했다.
이 책 '매혹하는 식물의 뇌'의 스테파노 만쿠소와 알레산드라 비올라가 바로 이런 다윈의 주장을 이어받았다.
저자들은 "식물 뿌리의 말단, 즉 '근단'은 뿌리의 생장을 지휘한다"고 밝힌다. 이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데, 식물 다른 부위의 요구 사항과 뿌리의 요구 사항이 다를 때도 있고, 심지어 물, 영양소, 무기염류 등이 각각 다른 곳에 분포해서 뿌리가 뻗어나가야 할 방향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근단'은 마치 우리의 뇌가 그렇게 하듯이 이런 서로 다른 욕구와 문제를 해결하고 식물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 시시각각 중력, 기온, 습도, 전기장, 빛, 압력, 독성물질, 소리의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같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마치 데이터처리센터처럼 정보를 분석해서 뿌리를 뻗을 곳을 정하는 것이다.
수많은 뿌리들, 그리고 그것이 모인 근단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두뇌와도 같이 작용하는 것인지 그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최신 연구 결과들은 속속 고등식물이 환경에서 신호를 받아들여 처리한 다음 생존에 적절한 해법을 도출해낸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식물이 개체가 아닌 군집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무리지성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지능을 그 핵심적인 의미만 담아 '삶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식물이 지능을 가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식물은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뿐 아니라 그 외에 열다섯 가지나 되는 감각을 더 가지고 있다. 이런 감각들을 단순히 눈, 코, 입, 귀 등 특정 기관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한정하지 않고, 빛과 냄새, 맛, 감촉, 소리 등을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넓게 생각한다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식량, 의약품, 에너지, 설비 등 우리는 식물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함에 식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저자들은 바로 지금이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구 주민으로서, 동반자적 생명체 식물을 다시 알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양병찬 옮김, 248쪽, 1만6000원, 행성B이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