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권여선(51)이 펴낸 다섯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는 삶의 비의를 그린다. 불가해한 장면을 잡아채는 선명하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무장했다.
인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 인간을 벼랑 끝까지 밀어뜨리는 순간, 그 비극을 견뎌내는 자들의 숭고함이 먹먹하다.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바지런히 발표한 일곱편의 단편소설들을 묶었다.
'봄밤'은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수환은 스무살에 쇳일을 시작해 서른셋에 사업을 일으킨다. 제법 돈을 벌지만 곧 부도를 맞아 아내에게 버림받는다. 서른아홉에 신용불량자가 돼 노숙생활까지 하게 된다.
영경은 교사생활을 하다 결혼한다. 그러나 곧 이혼하고 아들을 빼앗긴 뒤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술 때문에 생활이 마비돼 직장도 그만둔다. 그런 영경 앞에 수환이 나타난다. 수환이 조용히 등을 내밀어 그녀을 업었을 때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번 소설집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신다. '봄밤'의 영경이 술에 취한 채 김수영의 시를 큰 소리로 외는 장면이 가장 눈에 밟힌다.
바닥을 맞닥뜨린 자의 절망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며 취기 어린 인물의 행동을 복기해내는 권 작가의 언어가 도드라진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주정뱅이'의 아슬아슬한 내면이 서늘하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등 다른 단편들 역시 만만치 않은 위태위태한 가슴 시림을 보여준다. 276쪽, 1만2000원,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