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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느릿한 배우들과 빈 무대가 주는 '동화적 판타지'..
사회

느릿한 배우들과 빈 무대가 주는 '동화적 판타지'

운영자 기자 입력 2016/07/04 16:18 수정 2016.07.04 16:18
고선웅의 연극 '곰의 아내'
▲     © 운영자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하반기 프로그램을 여는 연극 '곰의 아내'의 화두는 간극 메우기였다.
 신화적 상상력과 은유가 깃든 극작가 고연옥 작가의 세계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재기발랄함으로 승화시키는 연출가 고선웅의 연극관. 상반된 성향의 두 사람이 7년 만에 내는 시너지는 어떤 풍경일 지 눈길을 끌었다.
 2009년 역시 남산예술센터를 통해 협업한 연극 '오늘, 손님 오신다' 속 '가정방문'에서는 같은 곳을 바라봤다.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쓰레기분리수거장에 사는 엄마와 그녀를 설득하러 나선 교사의 실랑이를 그린 '가정방문'은 은유와 현실이 적당히 공존했다.
'곰의 아내'에서 두 사람은 마주봐야 했다. 은유와 현실이 맞서는 내용이다. 숲에서 길을 잃은 뒤 곰의 새끼를 낳고 살아온 여자와 현실에서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남자는 고연옥과 고선웅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무의식과 원형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고 작가는 말 그대로 곰을 찾아 나서는 곰의 아내를 닮았다. 그녀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녀 신화를 모티브로 삼아 글을 써내려갔다.
 고 연출은 조금 더 현실에 가닿기를 원한 듯하다. 극작가이기도 한 그는 결국 각색을 선택했다. '처(妻)의 감각'이라는 대본의 원제가 공연에서는 '곰의 아내'로 바뀐 이유다.
 덕분에 연극은 고 연출의 인장이 분명해졌다. 사장을 배신까지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남자(안성현)가 코너에 몰리는 노래방의 페르소나 짙은 신 등 고 연출의 화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향수를 느낄 만한 부분들이다.
'한국인의 초상' 등 최근 BGM에 대한 관심을 보여온 그답게 더 샘 앤 더 파라오스의 '울리불리', 영화 '밤의 문'을 통해 알려진 샹송의 고전 '고엽'(Les Feuilles Mortes) 등이 울려퍼진다.
 느릿하면서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 국립극단과 협업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에서 보여준 빈 무대의 미학 등 연극 장치에서도 고 연출의 흔적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곰의 아내(김호정)의 초연함이 그녀의 생명력을 펄떡이게 만든다. 곰 남편을 잃은 뒤 만난 인간 남자는 '진짜 인간'이 되겠다며 그녀와 세 자녀를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곰의 아내는 껍데기는 필요없다며 의젓한 척 미소 짓는다. 그 때 '진짜 곰'이 등장한다. 고 연출식 동화적 판타지다.
 고 연출은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회귀와 회피 등 다양한 함의가 가득한 대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며 삶이 속일지라도 살아내자는 자신의 긍정의 힘을 보여준다. 고 작가는 '처의 감각'이라는 제목의 대본을 따로 남겼다. 지난해 제5회 벽산희곡상을 수상작이다.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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