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하반기 프로그램을 여는 연극 '곰의 아내'의 화두는 간극 메우기였다.
신화적 상상력과 은유가 깃든 극작가 고연옥 작가의 세계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재기발랄함으로 승화시키는 연출가 고선웅의 연극관. 상반된 성향의 두 사람이 7년 만에 내는 시너지는 어떤 풍경일 지 눈길을 끌었다.
2009년 역시 남산예술센터를 통해 협업한 연극 '오늘, 손님 오신다' 속 '가정방문'에서는 같은 곳을 바라봤다.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쓰레기분리수거장에 사는 엄마와 그녀를 설득하러 나선 교사의 실랑이를 그린 '가정방문'은 은유와 현실이 적당히 공존했다.
'곰의 아내'에서 두 사람은 마주봐야 했다. 은유와 현실이 맞서는 내용이다. 숲에서 길을 잃은 뒤 곰의 새끼를 낳고 살아온 여자와 현실에서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남자는 고연옥과 고선웅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무의식과 원형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고 작가는 말 그대로 곰을 찾아 나서는 곰의 아내를 닮았다. 그녀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녀 신화를 모티브로 삼아 글을 써내려갔다.
고 연출은 조금 더 현실에 가닿기를 원한 듯하다. 극작가이기도 한 그는 결국 각색을 선택했다. '처(妻)의 감각'이라는 대본의 원제가 공연에서는 '곰의 아내'로 바뀐 이유다.
덕분에 연극은 고 연출의 인장이 분명해졌다. 사장을 배신까지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남자(안성현)가 코너에 몰리는 노래방의 페르소나 짙은 신 등 고 연출의 화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향수를 느낄 만한 부분들이다.
'한국인의 초상' 등 최근 BGM에 대한 관심을 보여온 그답게 더 샘 앤 더 파라오스의 '울리불리', 영화 '밤의 문'을 통해 알려진 샹송의 고전 '고엽'(Les Feuilles Mortes) 등이 울려퍼진다.
느릿하면서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 국립극단과 협업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에서 보여준 빈 무대의 미학 등 연극 장치에서도 고 연출의 흔적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곰의 아내(김호정)의 초연함이 그녀의 생명력을 펄떡이게 만든다. 곰 남편을 잃은 뒤 만난 인간 남자는 '진짜 인간'이 되겠다며 그녀와 세 자녀를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곰의 아내는 껍데기는 필요없다며 의젓한 척 미소 짓는다. 그 때 '진짜 곰'이 등장한다. 고 연출식 동화적 판타지다.
고 연출은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회귀와 회피 등 다양한 함의가 가득한 대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며 삶이 속일지라도 살아내자는 자신의 긍정의 힘을 보여준다. 고 작가는 '처의 감각'이라는 제목의 대본을 따로 남겼다. 지난해 제5회 벽산희곡상을 수상작이다.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