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할 때는 결국 상대를 찾게 되죠. 이번에 제 연기 상대는 무너져내려오는 돌무더기와 흘러져 내려오는 흙더미였어요.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의 상대역이 배구공 윌슨이었다면, 저도 그런 걸 찾았던 거죠."
배우 하정우(38)의 신작 '터널'(감독 김성훈·8월10일 개봉)은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터널이 무너져 내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터널'은 두 세계로 나눠볼 수 있다. 무너진 시멘트 덩어리로 인해 고립된 터널이 하나이고, 생존자를 구하려는 밖의 세상이 또 다른 세계다.
하정우가 연기한 평범한 회사원 '정수'는 터널 안에 갇힌 인물이다. 그 세계에는 정수 한 명만 존재한다. 정수와 세계를 이어주는 건 휴대전화뿐, 하정우가 돌과 흙을 상대 배우로 생각하고 연기했다는 건 그런 의미다. 하정우는 그러면서도 "이번 촬영은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진 만큼 분진, 먼지, 흙…, 이런 것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고 했다.
하정우는 앞서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상대역 없이 카메라 앞에서 홀로 연기하는 걸 경험했다. '터널'과 '더 테러 라이브'에는 공통점도 있다. 하정우가 연기한 인물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런 유사성에도 그가 '터널'을 택한 이유는 "아이러니함에서 나오는 블랙코미디" 때문이다. 이런 요소는 '더 테러 라이브'에는 없다.
하정우는 이와 관련, "한 생명 살리려고 온 나라가 열심히 구조 작업 나서는데 안에서는 (터널에 갇힌)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참 놀랍고 흥미로웠던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정수가 터널 안에서 재미를 찾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버텨가는 그 모습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 폐쇄된 곳에서 연기해야 했던 하정우 자신도 그런 연기 상황에 점차 적응해나갔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이런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처음에는 몸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공간에 맞게 내가 움직이고 있더라. 그것 자체가 참 놀랍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오달수·배두나와 호흡을 맞췄다. 오달수는 구조대장 '대경', 배두나는 하정우가 연기한 정수의 아내 '세현'을 연기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실제로 두 배우와 얼굴을 마주하며 연기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정우는 오달수·배두나와 주로 통화하는 연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