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형식 서울시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뇌물장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숨진 재력가 송 모 씨는 2006년 7월부터 올해 3월 피살당하기 전까지 날짜별로 지출 내역을 기록한 장부를 작성했다.
이 장부에는 김형식 서울시 의원에게 돈을 준 내역 외에도 현직 검사와 전·현직 경찰관, 세무·소방 공무원의 이름과 직책, 금액이 곳곳에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관계 인사의 금품 수수 의혹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뇌물장부’로 불리면서 로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장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제각각의 모습을 보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은 당초 이 검사가 한 차례 2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가 두 차례 300만원으로 말을 바꾸더니 하루 뒤인 15일에는 10차례 1,780만원으로 또다시 정정했다.
유족들이 장부 곳곳을 수정액으로 지우고 별지를 찢어버린 채 제출했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워진 부분을 확인하는 당연한 절차를 생략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직무유기이다. 검찰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경찰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경찰은 송 씨가 피살된 지난 3월 이 장부를 입수해 복사본을 만들어 놓고도 수사기록을 검찰에 넘기면서 이것은 빼놓았다. 뿐만 아니라 사본은 없다고 시치미를 떼며 거짓말까지 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검찰과 경찰의 현주소를 보는듯 하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문제의 검사에 대해 직무를 정지시키고 대검 감찰본부가 직접 수사에 나서기는 했지만 이번 사안은 결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같은 행태는 수사의 진정성에 의심부터 갖게 한다.
재력가와 정·관계 인사의 유착 비리에 관한 의혹이 남지 않게 하려면 더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특히 이번 사안은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검경 사이에 수사권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노력에서는 서로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검경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이 축소되고 왜곡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당국은 이번 사안이 벌어진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 앞으로는 결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