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과수가 지난 25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정밀 감식한 결과 유씨인 것은 틀림없지만 사망 원인은 판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 사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과수가 사인분석에 실패함에 따라 사망원인과 사망시점 등 유씨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해소되지 못했다.
유씨가 언제,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수사가 난관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유씨는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핵심 인물이다.
그가 없으면 얽히고설킨 세월호 관련 비리를 밝혀내기 어렵다.
검찰은 당사자 사망으로 그에 대한 모든 수사를‘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해야 할 상황에 빠졌다. 그의 사망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과수 정밀감식으로도 별다른 실마리가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세간에는 변사자가 유씨가 아니라든가, 시신을 바꿔치기했다든가 하는 온갖 설과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교훈을 바탕으로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아도 부족한 때에 유씨 사망을 둘러싼 의혹과 설이 난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자명하다.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공식 해명이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이런 불신의 원인은 정부가 제공한 셈이니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 해경 등 정부가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사고대응부터 시작해 헛발질만 한 검·경의 유병언 수사에 이르기까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검찰과 경찰은 서로 정보 공유나 공조수사보다도 국민들에게 검경의 갈등상황만 노출되고 말았다. 이러고도 국민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새로운 각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검경은 유씨 증언없이도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내야 한다.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세월호 원혼을 달래주는 게 수사당국의 남은 책무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 규명을 위한 수사를 완벽하고 투명하게 펼쳐 유가족과 국민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