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악 전문가인 국악작곡가 윤소희 박사(음악인류학)가 앨범 ‘성철 이야기’를 냈다.
모름지기 가장 유명한 현대불교 승려인 퇴옹(退翁) 성철(1912~1993)의 메시지를 CD 2장에 담았다.
퇴옹회상, 출가송, 당신의 생일입니다, 돈오가풍, 자기를 바로 봅시다, 퇴옹전에서, 산은 산 물은 물, 오도송, 초연독보, 백일법문 등으로 이어지는 음악과 노래가 다는 아니다. 성철의 육성, 제자 원택 스님의 대담‘성철스님 시봉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원택 이사장은 “성철 큰스님은 1993년 11월4일에 열반에 들었다. 7일장을 마치고 사리수습에 이르기까지 10여일 간 (해인사) 퇴설당 주변과 백련암 인근에서 7~8차례나 방광(부처가 광명을 냄)을 하니, 이를 본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고 감격했다”고 전한다.
성철스님과 관련, 대중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신비, 초현상이다. 음악감독인 윤 박사도 음반 작업과정에서‘소름 돋은 일’이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는 2009년 무렵 이미 선율을 대강 지어놓은 상태였다. 그때 성철스님의 말씨를 연상하며 곡을 썼다. 누가 부탁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지어놓고 언젠가는 불러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었을까, 2013년 여름 성철스님 음반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2014년 4월, 음반에 담을 사진을 찾다 보니 그 원고 사진 파일이 있었다. 2014년 7월 음반 녹음이 진행되던 무렵,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다른 것은 없고‘자기를 바로 봅시다’가 있다며 보내왔다. 원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육성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음원을 들어보니 신기하게도 원고를 낭독하는 스님의 억양이 노래 선율과 닮은지라 순간….”
그러나 여기까지다. 더 이상의 호기심은 차단한다. 성철의‘열반송’에 주목하라고 청한다.
확철대오한 천하의 성철은“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 하늘 넘치는 죄업을 지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윤 박사는“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간에서는 분분한 해석들을 내놓았지만 나는‘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각오했다. 남의 탓, 변명, 원망, 미움, 탐욕과 위선, 그런데도 예의와 품위로 그럴싸하게 꾸며 사는 일상의 습이 덕지덕지 보였기 때문이다.”
“속가에서의 여유로운 살림과 백과사전과 경전을 한 몸에 이루고서도 누더기 옷 한 벌로 연명한 분인데, 그 열반송을 보고 왜 우리들의 열반송임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참회와 정진’으로 화답해야 할 도리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음반을 통해 열반송을 노래하고 착복무(나비춤)를 추면서 큰스님의 적멸열반을 재현하고‘그날’을 통해 이제‘알아들었습니다’며 상여소리로 보내드리니 걸려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 하다”고 감격한다.
욕심도 낸다.“‘성철’이라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철스님이나 혹은 근자에 우리 곁에 온 교황이 아무리 훌륭하고 자비롭더라도 그분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우리 각자들이다. 그분들이 세월호와 함께 떠나버린 내 자식, 내 가족이 돼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성철의 음성과 그것을 실어나르는 ‘성철 이야기’음악을 권하는 이유다. 그 속에서 부처가 드러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수=기독교, 석가모니=불교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예수나 석가모니는 종교를 만든 분이 아니다. 기독교 밖의 예수, 불교 밖의 석가모니에 대해서 가슴을 열고 있는 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와 같이 부처의 종자, 혹은 사랑(예수) 혹은 아가페적 사랑, 아니 선과 악도 아닌 나의 본성을 바로 보고자 한다. 음악은 요란하지 않다. 그저 성철스님 말씨에서 조금, 아주 조금 음악이라는 조미료를 쳤으므로 누구나 담담하게 나를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악기로 치면 성철은 거문고다.“선비들의 품위와 수행자의 기개를 상징해 왔던 거문고로 성철스님을 표현했다. ‘영산회상’중 거문고 선율을 베이스에 두고 그 위에 바이올린과 첼로 가락을 얹었다. 여기에 일렉트릭 사운드의 오스티나토 음형으로 현대적 감성을 살렸다, 이를 통해 종교적 메시지와 더불어 순수음악으로서의 예술성과 미적 달성을 함께 추구했다.”
물형관상은 성철의 얼굴에서 코끼리를 읽는다. 지고 가야 할 짐이 몹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