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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밀어 붙이기식 공무원 연금개혁..
사회

밀어 붙이기식 공무원 연금개혁

서울 최태식 기자 입력 2014/09/22 22:15 수정 2014.09.22 22:15
당정청, 2년간 선거 이슈 없어 개혁드라이브 강행할 듯

박근혜 정부의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 연금 개혁안이 암초에 부딪혔다.
 
당사자인 공무원노조가 '연금법 개악'을 외치며 법시행의 결사 반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는 차제에 "세제와 정부재정을 개혁하고 국민 연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대국민 선전전에 나선 형국이다.
22일 오전 10시 한국연금학회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50여개 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소속 회원 500여명의 개최 저지로 끝내 무산됐다. 이들은 '공적연금 강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토론회 개최를 결사 저지했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왜 이 처럼 정부의 법안 추진에 결사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의 요청으로 한국연금학회가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골자는 재직 공무원들의 연금 수령액을 34% 깎고 매달 내야하는 부담금을 43%가량 올리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은퇴해 연금을 받고 있는 이들까지 '연금수급자 재정안정화 기여금'(공제금)이라는 명목으로 3%를 부담하도록 했다.
 
재직자들은 고사하고 퇴직자들의 연금 수령액까지 손을 대겠다는 심산이어서 반발이 불 보듯 뻔했다. 더욱이 연금 수령 나이도 60세에서 65세로 올리자는 내용까지 담겼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공무원 연금 개악안'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공청회에서 노조원들은 "국민의 노후를 팔아먹는 연금 개악을 반대한다. 공무원을 우습게 아는 새누리당은 물러가라"며 "이번 토론회는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일방적인 토론회"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개혁안에 대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구조 때문이다. 연금을 받는 공무원 노조 등이 개혁안 마련에 참여하지 않은 '밀실 개혁안'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연금 수령액의 기준이 되는 연금 급여율은 현재 재직 1년 당 1.9%p에서 2026년 1.25%p로 34%가 깎인다. 이렇게 되면 30년을 가입했을 경우 수령액은 전체 재직기간 평균소득의 57%에서 약 40% 수준으로 17%나 떨어진다.
납입한 개인 부담금의 이자율을 감안할 경우 2016년 이후 가입자들은 원금에 이자만 받게 되는 셈이다. 매달 내야하는 부담금도 43%나 오른다. 현재 14%(개인부담 7%)인 납입액이 2026년이면 20%(개인부담 10%)로 오르기 때문이다.
 
공투본은 공청회가 무산된 이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실에서 개악을 주도해 온 새누리당이 민간 재벌금융회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연금학회를 내세워 국민 여론을 떠보기 위해 정권의 나팔수로 내세운 것"이라며 "공무원을 비롯한 국민의 노후를 사적 금융자본의 손아귀로 내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충재 공투본 공동대표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공무원은 보수도 적고 퇴직금도 적고 재직 중 각종 불이익을 받으니 이를 감수하고 대신 연금으로 받으라고 했다. 구제역이나 산불 이 나도 목숨 내놓고 일했다"며 "그 약속을 박근혜 대통령이 깨겠다고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만명의 공무원과 36만명의 수급자 가족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번 연금학회 안은 공무원 연금의 이런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재정 축소만 언급했을 뿐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안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고 배포했다. 이게 연금 논란의 본질이다"고 비난했다.
조진호 공동대표 역시 "당사자들이 포함된 사회통합적 합의기구를 구성해서 함께 논의해 보자고 주장했다. 재정이 얼마만큼 부족하다는 내용을 샅샅이 국민에 공개하고 당사자인 국민과 정부와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연금학회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만들어낸 연금체계를 내놓고 토론회를 열었다. 연금학회 안에는 재정문제가 언급돼 있지 않다. 지금 당장 투입되는 재정이 얼마인지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며 "이런 내용을 이해당사자가 포함된 사회통합적 합의기구를 만들어서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논의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어 "개혁이란 미명으로 공무원연금을 축소하는 것은 공무원노동자들의 유일한 노후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연금 개악에 민간 보험회사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앞세우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고 뻔뻔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공무원연금 개악은 내용도 과정도 모두 부적절하다. 당장 중단돼야 한다"며 "논의가 필요하다면 공무원노동자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 각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청와대는 수술대에 올라온 공무원 연금을 다시 논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날 공청회 무산으로 뜨끔하기는 했지만 매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라 더 이상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2년여간 전국단위 선거가 없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도 강행 이유로 지적된다.
 
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과 군인연금 적자를 메우는데 3조3000억원의 세금이 투입됐고, 올해도 정부가 3조8000억원의 연금적자를 정부가 대납해야 할 상황이다. 2009년 이후 6년간 들어간 국민세금만 무려 18조원에 달한다. 내년 역시 안행부와 국방부는 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4조2564억원의 예산을 반영한 상태다.
 
그동안 '적게 내고 더 받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2020년께에는 적자보전액이 두 배인 8조원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밑 빠진 독'인 공무원·군인연금의 적자를 언제까지 메워줘야 하느냐고 입을 모은다. 퇴직 공무원들의 연금 월 200만원을 보장하기 위해 84만원의 연금을 받는 국민들이 혈세를 내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공무원 노조는 정부의 개혁안이 결국 사적연금시장만 배불릴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정부가 손대기 쉬운 간접세나 공무원 연금 등을 건드려 재정적자를 메우려 한다는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정부의 안대로 될 경우)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도 '수익비'(납입금 대비 수령액의 비율)가 낮아지면서 사실상 공적연금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사적연금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공적연금 지출율은 0.9%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8.4%에 비하면 제도의 존재가 무색할 지경"이라며 "그럼에도 오히려 사적연금은 활성화하고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3대 직역연금제도는 축소하려는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사실상 재벌들과 손잡고 그들의 사업 확대를 위한 특혜성 정책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겉으로는 가계소득 증대를 해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담뱃세 등 간접세를 증가시키는 등 전방위적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만든 한국연금학회의 성격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0년 11월 창립한 연금학회는 학술단체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회장단과 이사진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다수의 재벌 보험사로 꾸려져 있다. 공적연금이 축소될 경우 돈을 더 벌게 되는 민간보험회사의 관계자들인 셈이다. 민간 보험 업자들에게 공적연금의 설계를 맡긴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는 "흔한 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고, 제대로 된 연금개혁안이 나올 리 만무한 것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한 축에서는 이번이 공무원 연금을 손볼 최적의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내년에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이례적인 해인데다, 2016년 4월에서야 총선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을 비롯한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 적기라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정부가 선거 이슈도 없으니 공무원 연금을 손볼 적기라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 같다"며 "대기업에 비해 박봉인 공무원을 하려는 것도 연금과 같은 노후에 기댈 언덕이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이제 누가 공무원을 하려 하겠나"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공무원은 "요즘 이 문제 때문에 답답한 심정이다. 동료들 끼리 이야기 해 봐도 다들 답답해한다"며 "공무원 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면 공무원의 최대 메리트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퇴직할 때 되면 아이들 때문에 돈이 더 들어갈 텐데 사실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한편 공투위는 연금학회가 내놓은 '더 내고 덜 받는' 형태의 개혁안을 '개악'으로 규정하고, 끝까지 저지한다는 입장이어서 당정청과 공무원 노조 간의 힘겨루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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