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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리뷰]'한 끗 없는 뻔한' 영화 '기술자들'..
사회

[리뷰]'한 끗 없는 뻔한' 영화 '기술자들'

운영자 기자 입력 2014/12/25 15:18 수정 2014.12.25 15:18
기존의 케이퍼 무비와 비슷...가장 큰 수확은 김우빈

영화 '기술자들'(감독 김홍선)의 한 장면


SBS TV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시즌4의 심사위원인 가수 유희열은 한 참가자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한 끗 달라야 해요." 하루하루 새로운 가수가 끊임없이 나오고 수많은 노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살아남아 가수가 되려면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뻔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뻔하지 않다는 게 완전히 새로운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람이 관습에서 탈피하는 걸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새롭다는 건 유희열의 말처럼 더도 말고 딱 한 끗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금고털이 전문가 '지혁'(김우빈)은 인력 조달 전문 바람잡이 '구인'(고창석), 해커 '종배'(이현우)와 함께 한 보석상의 비밀 금고를 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 보석의 주인이 재계의 검은손으로 통하는 조 사장(김영철)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이 꼬인다. 마침 국회의원들이 인천세관에 숨겨놓은 1500억원을 가로챌 궁리를 하던 조 사장은 지혁 일당을 끌어들인다.
영화 '기술자들'(감독 김홍선)은 케이퍼 무비의 기본 틀을 그대로 따라간다. 곧이곧대로 따라다니다가 관습적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기술자들'에는 기존의 케이퍼 무비와 비교해 다른 '한 끗'이 없다.
케이퍼 무비는 관객과 두뇌 싸움을 하는 장르다. 관객은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완전 범죄를 저지를지 머리를 굴려가며 영화를 본다. 연출가는 그런 관객을 손바닥 위에 놓고, 예상을 벗어나는 설정을 곳곳에 심어 관객을 기만한다. 이런 기만은 다시 관객에게 역으로 쾌감을 안긴다.
'기술자들'에게 닥친 재앙은 관객과 연출가의 관계가 이상적인 상황과는 정반대로 펼쳐진다는 데 있다. 관객이 영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본다. 이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대부분 상황을 어느 정도 미리 내다볼 수 있을 것이고(심지어 이 영화의 최대 반전까지), 케이퍼 무비를 단 몇 편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영화가 내뿜는 알 수 없는 익숙한 공기에 대체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케이퍼 무비는 극의 모든 설정이 단서가 된다. 케이퍼 무비의 성패는 이 단서들이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질 일들과 연결돼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하게 하는 데 있다. 하지만 '기술자들'은 극을 이루는 요소들을 뚝뚝 끊어지게 배치해 모든 사건의 자초지종이 밝혀질 때의 감탄을 자체적으로 제거한다.(구체적인 사례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전형성은 캐릭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혁은 이 장르의 주인공이 대개 그러하듯이 시종일관 건들거리지만, 머리는 좋은 '딱 그 캐릭터'다. 지혁은 생기가 없는 인물로 보이는데 이는 김우빈의 연기력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문제 탓이다. 구인과 종배, 조 사장 또한 이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쯤 되면 캐릭터 조형에 실패했다고 보기보다는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게 더 정확하다.
반전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약점이다. 이렇다 보니 케이퍼 무비 특유의 쾌감이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지 못한다. 관객은 심드렁한데, '기술자들'은 혼자 신이 나 있다.
'기술자들'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김우빈이다. 전작들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연기를 했던 이 젊은 배우는 '기술자들'에서 러닝타임 내내 담백한 표정과 가벼운 움직임으로 자신의 연기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김우빈을 말할 때 흔히 쓰이는 수식어인 '대세'라는 단어는 단순히 뛰어난 외모에서만 나온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다.
김우빈의 팬이라면, 김우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기술자들'을 즐겁게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케이퍼 무비를 즐기려는 장르영화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영화가 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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