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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사회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1/04 21:05 수정 2015.01.04 21:05
▲     © 방기택 국장님

 
 
 
 

  이제부터 새해가 비롯한다. 새해란 묶은 것을 털어버리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오는 해를 맞는 것도 뜻한다. 털어 버려야 새해를 맞을 수가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난바다의 수평선을 뚫고서 붉은 해가 쏟았다. 누구나 새해가 오면, 새해답게 새해는 꼭 성취하고 싶은 것에 대한 결심도 하게 마련이다. 이 같은 결심과 결단이 진정한 새해맞이이다. 새해에는 꼭 하고 싶은 것의 성취가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버킷리스트(bucket list)이다. 버킷리스트의 원래의 뜻은 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발로 차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 죽기 전에 꼭 해야 할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록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새해이니, 죽기 전보다도 아니고 살아서도 아니고 ‘올해에 꼭하고 싶은 것’에 중점을 두고 저마다 버킷리스트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이 훨씬 새해다울 것으로 본다. 새해는 결단이다. 행동이다. 행동이 없는 결단은 아무 소용이 없다.
  교수신문은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뽑았다. 이 뜻은 사슴들이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난해를 상당히 부정적인 측면만 살핀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다. 우리사회는 착한 사슴도 있고 그렇지가 않는 것도 동시에 존재한다.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수많은 스펙트럼을 생산한다. 여기에서 지록위마 같은 사회를 걸러내는 여론이라는 장치가 여과시켜,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사회구성원들이 저마다 만든 좋은 버킷리스트가 사회여론으로써 작동함에 따라 우리사회는 앞으로 발을 옮긴다. 사회는 여론도 생산하지만 잘못된 것도 바르게 잡는 역할까지도 도맡는 것도 훌륭히 해낸다. ‘하늘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보리라.’ 이 시에 대한 감상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이 시를 읽는 마음은 참으로 남다른 게 있다. 동트는 해가 어둠까지 살라먹은 다음에야 ‘고운 해’라고 호명(呼名)한 것에 새해 무게중심을 두고 싶다. 더군다나 꽃도 새도 짐승도 모두 불어 한자리에 두는 사회를 말하는 듯하다. 이렇게 읽고 보니 새해의 소감이 더욱 돋보인다. 시의 화자(話者)가 지칭하는 은유(隱喩)가 유독 눈길을 끈다. 2015년도에는 모든 어둠까지도 없는 새해를 소망한다. 저마다 작성한 버킷리스트가 성취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기가 선 자리가 복된 자리가 된다. 한정된 자본과 권력을 두고 아귀다툼만 해댄다면, 사회는 온통 싸움판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러나 사회는 고른 것이 최상의 덕목이다. 이 같은 덕목 만들기는 정치가의 몫이다. 정치가 고른 사회 만들기에 앞장을 서야 한다. 이게 바로 ‘지록위마’의 지우기이다. ‘고운 해’ 부르기이다. 아마도 전 국민적인 버킷리스트는 모두가 보다 잘사는 것으로 짐작한다. 국민적인 버킷리스트는 ‘나눔-배려-섬김-이웃사랑’일 때에 소외계층도 없게 된다. 신자유주주의 시대에서는 자칫 한발을 잘못 내딛는 순간에 단박에 뒤처지고 만다. 이때는 앞서가는 이들이 위에서 짚은 나눔 등의 사회 만들기를 해야 한다. 뒤로 손을 내밀기이다. 손을 잡고 당겨주기이다. 이게 박두진 시인이 읊은 고운 해의 올바른 맞기다. 이쯤에서 우리가 만들고 뽑은 2015년도의 희망의 사자성어를 만들어보기를 권유한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이다. ‘승승장구(乘勝長驅)’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를 가더라도 주인공이 되라)이다.만사형통(萬事亨通)이다.하지만 이 같은 말이 그냥 자기의 구체적인 현실이 되지 않는다. 자기의 노력이다.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씨뿌리기와 수확이 동의어(同義語)가 되기 위해서는 끓임이 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고운 해’도 어둠을 살라먹는 새해의 노력에 원인하기에 더욱 그렇다. 노력으로 안 되는 분야는 정치가 너럭바위 같은 판을 펼쳐줘야 한다. 정치가의 너럭바위에서 국민들은 고운 해맞이를 준비한다. 다시 박두진 시인의 ‘고운 해’가 2015년도의 전 국민적인 노래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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