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박철상l5년걸쳐 고문자료 조사'서재에 살다' 펴내
서제에 살다
조선의 왕 정조에게서 '국왕'이라는 수식어를 떼면 부단히 학문을 갈고닦았던 학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서재 이름이자 호인 '홍재'가 이를 설명한다.
'홍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란 뜻이다.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씀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에서 '클 홍(弘)'을 따왔다. 정조는 서재를 드나들 때마다 나아갈 길을 확인했다.
서재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의 면모를 그린 책이 출간됐다. '세한도'의 저자 박철상이 5년에 걸쳐 고문을 읽고 자료를 조사해 펴낸 '서재에 살다'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지식인의 모든 이름은 그들이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 교류하던 서재의 이름이다.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여유당 정약용, 완당 김정희 등이 그렇다. 그들의 서재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역관 김한태에게 서재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었다. 그는 송나라 정치가 범중엄이 남긴 말에 기원을 두고 서재를 '자이열재'라 이름 붙였다. '이열은 즐겁다는 뜻이다. (중략) 관직에 있는 사람은 혼자서만 즐거워해서는 절대 안 된다.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는 국민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라는 것이다.'(150쪽)
학자들에게 서재는 은거의 공간이기도 했다. 촉망받던 인재였다가 한때 천주학을 접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서재를 '여유당'이라 이름 짓고 학자로서의 삶의 태도를 아로새겼다. '여'와 '유'는 '여(與)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하고/ 유(猶)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는 노자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논어'를 병품 삼고 '한서'를 이불 삼았던, '맹자' 7책을 팔아 밥을 해먹었던 책바보 이덕무, 벼루 모으는 취미를 가졌던 조희룡, 유클리드 기하학에 착안해 서재 이름을 붙인 유금, 공동 서재를 사용한 전기소와 유재소 등 흥미로운 지식인의 서재가 펼쳐진다.
저자는 "서재 이름에 담긴 의미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북학과 연행의 시대였던 19세기 문화를 엿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320쪽, 1만7000원,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