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2015년 새해 아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남북 정상회담을 요점으로 하는 신년사에 대해 직접적인 견해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현실적 상황을 볼 때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 관련된 의견 제시와 김정은 신년사를 비교해 보면 회담 성사를 위한 양측의 조건이 상당히 달라졌다하지만 북한 핵, 한·미 연합 훈련 등 '근본 문제'로 부딪힐 경우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신년인사에서도 뚜렷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자세한 목표나 구상을 밝히지 않았고 남북 정상회담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통일로 가는 길에 있는 과정이고 가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북한과의 회담도 과거 회담과는 다르게 신중성을 갖고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남북 정상회담은 매력적인 카드"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핵에서 성과가 없다면 국론(國論) 분열 초래는 물론 한·미 관계에도 독(毒)이 될 수 있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핵·미사일 문제에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를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거론한 것은 한·미 연합 훈련 중지다. 김정은은 "전쟁 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고 북남 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 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방부는 이날 "한·미 연합 체제가 있는 한 훈련은 계속될 것"이라며 훈련 일정 조정 가능성도 "현재로써는 없다"고 했다. 한·미 양국은 키 리졸브(KR) 및 독수리(FE) 연습을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2월 말 시작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 의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밝힌 북한 핵은 김정은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는 국제사회의 인권 공세 등을 언급하며 "우리가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튼튼히 지켜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라며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선군 정치와 병진 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겠다"고 했다.
외교·안보 라인의 한 관계자는 "정상회담까지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 "어떤 형태로든 북측과 접촉해 북한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소식통은 2일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는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보다 뒤에서 하는 게 더 소통이 잘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한·미 훈련이나 핵 문제가 원천적으로 변경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수석 연구위원은 "북한은 지난해 한·미 훈련 기간 중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고, 10·4 선언에 핵 문제를 포함한 바 있다"고 했다. 북한이 절박할 경우 조건을 유연하게 적용한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