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 헌재 결정 타당성 논란 가중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가 22일 이석기 前 의원의 상고심을 통해 지하혁명조직(RO·Revoultionary Organization)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RO를 주도세력으로 규정, 이를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던 헌법재판소 결정의 타당성 논란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특히 헌재가 이 전 의원 등의 내란음모죄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에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은 "순리를 거스른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진보당이 헌재 결정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향후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법원, RO 실체 인정 안해= 대법원은 이날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국가정보원 제보자 이모씨의 진술을 종합하면 RO라는 단체의 결성시기, 과정, 조직체계, 130여명의 사람들이 조직의 지침에 따라 활동했다는 점 등을 인정할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RO의 실체가 있다는 근거는 국정원 제보자 이씨가 제공한 2011년부터 2013년 9월까지 RO와 관련된 녹음파일과 동영상 등이 전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씨의 진술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고 녹음파일 등도 RO의 실체를 인정할만한 충분한 자료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내란음모는 무죄·내란선동은 유죄= 대법원은 이 전 의원 주도로 RO 회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구체적, 실질적 위험으로까진 나아가지 않았다고 판단해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하고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원이 RO 회합에서 했던 발언만으로는 내란음모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내란선동 혐의는 일반적으로 선동은 감정을 자극하는 추상적인 표현으로도 가능한 만큼 유죄가 인정되기에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란선동죄는 범죄행위의 시기·대상·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선동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다, 객관적인 정황을 고려할 때 선동의 상대방이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결의·실행할 개연성이 인정되면 충분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난감한 헌재…"실체없는 RO 근거로 정당해산 결정한 꼴"= RO를 '주도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진보당을 해산시켰던 헌재는 대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사실상 '실체도 없는 조직'을 근거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을 해산시킨 모양새가 됐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헌재 결정에 끊임없이 진보당이 이의를 제기할 빌미가 될 것이란 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기본적 전제는 내란을 할 수 있는 '조직'을 갖췄다는 점이었다"며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해산결정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깎아내린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헌재는 헌법에 따라 판단한 것인 만큼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에 따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장은 "법률이 아무리 효력을 가지고 있어도 헌법이 정한 효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대법원은 헌재가 결정한 사안을 가지고 판단, RO의 실체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