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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깨진 유리창 이론’과 ‘어린이집 폭력’..
사회

‘깨진 유리창 이론’과 ‘어린이집 폭력’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2/01 17:36 수정 2015.02.01 17:36

▲     © 房 玘 泰 편집국장
  우리아이를 탈 없이 낳아 탈 없이 키우고 싶다고 이렇게 글을 시작하려니, 참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소망이다. 이 같이 ‘소박·단순’이 우리사회에 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애통함을 지울 수가 없다. 탈 없이 보다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아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경찰이 주먹으로 원생들을 때리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를 받는 인천 부평 모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지난달 23일 구속했다. 이게 어제 오늘만이 아니다. 좀 전에만 해도 폭력 보육교사가 구속되었다. 구속일변도로는 안 된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또 대구의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가 학생을 폭행해 학생의 고막이 파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해당 학교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교사가 학생의 태도가 불량하고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폭행 과정에서 학생은 고막이 파열되는 등의 상해를 입어 병원에서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다. 얼마 전 포항의 어느 병원에서 출산이후에 산모가 갑자기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군에 보냈더니, 아이가 바다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부터 군까지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판이다. 여론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들고 일어섰다. 뒤따라 당국도 대책수립에 열을 올렸다. 황우여 부총리는 보육교사의 양성 과정을 엄격히 하고 자격을 강화하고 자질을 높여야 한다. 그에 따른 처우와 근무요건도 개선해 아이를 정성껏 돌보데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이다.
  이제 보육현장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생각할 때이다. 아이는 교육의 대상임에는 이론(異論)이 없다. 하지만 이론이 없는 한가운데에 빠진 것을 찾아야 한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198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어, 1990년 9월 2일 발효되었다. 2014년 4월 2일까지 194개국이 비준했다. 협약은 아동을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서 보육교사를 포함한 어른들의 책임을 따져 본다면,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회가 책임질 사항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회가 어린이집의 밑동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 이 같은 것들이 일부 보육현장에서 실종되는가이다. 이유는 항상 간단하다. 연봉이다. 더하여 보육교사 인력부족이다.
  이들의 본봉은 기껏해야 평균적으로 110만 원이다. 각종 수당을 포함해도 140만 원 정도이다. 이 정도 봉급으로는 교사의 품위유지나 자존감은커녕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만 살아야 한다. 쥐꼬리 연봉에다 돌볼 아이는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형편이 복합적으로 현장에서 역작용을 하는 바람에 위에 든 가치들이 실종한다고 봐야할 ‘빈틈’이 생긴다. 빈틈을 다시 말을 한다면,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한적한 골목에 두 대의 자동차 보닛을 열어놓은 채 놔뒀다. 그중 한 대는 유리창을 조금 깨트려 놓았다. 1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처음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렇지만 유리창이 조금 깨진 차는 고철과 다름없이 엉망으로 파손됐다. 1969년에 미국 스탠포드대학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한 실험결과이다.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이 점에 착안해,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위에 든 ‘어린이집의 빈틈’을 ‘깨진 유리창’에다 접목하면, 어린이집 폭력이 왜 일상화하는가를 알 수가 있는듯하다. 당초에 어린이집 유리창이 딱 한번이라도 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상은 범죄로 곧바로 줄줄이 넝쿨처럼 이어진다. 이제부터라도 깨어진 유리창인 어린이집의 빈틈 메우기에 나서야 한다.
  연봉 인상이다. 이것이 우선적으로 해결이 되지 못한다면, 빈틈은 현재진행형으로 유리창이 깨어지기 마련이다. 이게 하나의 방책일 뿐이라고 할망정, 시급한 과제이다. 물론 이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해도, 생활인에겐 중요한 대목이다. 끝으로 ‘맥아더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 일부를 보면,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로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 모든 부모가 소망하는 기도문이다. 이제라도 늦지가 않다. 당국이 대책을 세울 때에, 위의 기도문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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