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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운장(運將)과 명장(名將)을 아시나요..
사회

운장(運將)과 명장(名將)을 아시나요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2/01 17:45 수정 2015.02.01 17:45
‘섬세한 용병술’슈틸리케’…‘韓축구 자긍심’ 되살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잊고 있었던 한국 축구의 자긍심을 일깨워줬다. 비록 55년 만의 우승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후 6시(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의 호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호주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개최국 호주에 1-2로 석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1988년 이후 27년 만에 한국을 아시안컵 결승에 올려 놓았다. 박종환(77)·허정무(60) 등 이후 6명의 사령탑들이 한 번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부임 4개월 만에 일궜다.
  그는 불과 7개월 전 팬들로부터 엿가락 세례을 받던 대표팀을 박수받는 존재로 격상시켰다.
  한국이 승승장구 끝에 결승까지 진출하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의 운을 거론하기도 했다. 능력은 없지만 타고난 운이 좋은 '운장(運將)'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는 온당하지 못하다. 운이 없어 우승을 못했다는 것이 핑계밖에 될 수 없듯, 온전히 운에 기대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 내용은 다소 답답하게 비쳐질 수는 있지만 8강 토너먼트부터는 달랐다. 슈틸리케 감독의 변주곡이 시작됐고 내용과 결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대표팀이 걸어온 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히 운이 좋아 이룰 수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바랐던 무실점 전승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6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 기록을 세웠다.
  이는 1990년과 1996년 각각 한 차례씩 거둔 대표팀의 A매치 6연승 무실점 승리 기록보다 더욱 값진 결과다.
  이 같은 성과를 낸 중심에는 슈틸리케 감독이 있다.
  그는 대표팀 내에서 세심함의 대명사로 통한다. 인터뷰를 하는 선수들마다 슈틸리케 감독의 섬세함을 이야기한다.
  한국 나이로 환갑인 그는 선수들에게 항상 먼저 묻는다. 컨디션은 괜찮은지 고민은 없는지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막내 아들보다 더 어린 선수들을 배려한다.
  구자철(26·마인츠)에게서 주장 완장의 무거움을 벗겨준 것도 그같은 배려에서 나왔다. 완장을 뗀 구자철은 오만과의 1차전에서 펄펄 날았고, 조영철(26·카타르SC)의 결승골을 이끌어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몸에 밴 배려 정신은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이청용(27·볼턴)과 구자철이 부상으로, 손흥민(23·레버쿠젠) 등 주전들이 감기로 전열을 이탈한 상황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휴식을 지시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배려의 리더십은 눈앞의 결과에 급급해 4경기 연속 베스트 전력만을 고집했던 일본의 하비에르 아기레(57·멕시코) 감독의 실패와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가 기자회견장에 데리고 나온 선수들은 한결같이 다음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슈틸리케 감독의 법칙'이라고 회자되기도 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인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평소 강조해 온 전술적 유연성은 결승전 때 더욱 빛났다.
  박주호를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시킨 것과 후반 막판에 수비수 곽태휘(34·알 힐랄)를 최전방으로 끌어올리는 등의 파격적인 전술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비록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2로 졌지만 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과감한 용병술에 박수를 보냈다.
  결승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가 남긴 말은 선수들은 물론 국민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네티즌들은 감독의 이 말을 듣고 선수들 뿐만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 또한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그에게서 '제2의 히딩크' 향수가 느껴졌다. 이제 그 누구도 슈틸리케 감독을 두고 운장(運將)이라고 부르는 이는 없을 듯 하다. 그는 명장(名將)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아시안컵은 더욱 큰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기에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다. 시드니(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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