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전쟁서 입었던 방어용 면갑옷 선보여
19세기 말 조선군 입었던 면 갑옷
19세기 말 전쟁에서 입었던 방어용 면갑옷이 국립중앙박물관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상설 전시된다.
면갑은 면 30겹을 겹쳐 만든 갑옷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공군옥(孔君玉)’이란 사람이 입었다. 면갑 안쪽에 ‘공군옥’이란 먹물로 쓴 글씨가 있어 이 면갑의 실제 주인공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공군옥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규수(1807~1876)의 문집인 ‘헌재집’에 그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이 면갑은 목둘레는 둥글고 앞길이가 길고 뒷길이가 짧은 전장후단형 배자 형태다. 왼쪽 어깨는 솔기가 없이 한 장으로 연결돼 있으며 착용을 위해 오른쪽 어깨를 텄다. 소매와 깃이 없고 옆선은 모두 트여 있고 옆에 달린 고름을 매어 착용했다. 앞길이 82.5㎝, 뒷길이 75㎝, 두께 1.5㎝, 무게는 5.5㎏이다. 6개의 문양이 흑색으로 날인됐다.
면갑은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외국 군인들의 총탄을 막고자 개발됐다. 그러나 조총의 탄알은 막을 수 있었으나 신식 소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871년 6월 강화도에서 벌어진 신미양요 때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비하면 조선군은 맨주먹으로 전투하는 것과 다름없이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전투복만 입었다. 이는 오히려 더운 날씨에 그들을 탈진 상태로 몰아넣었다. 조선군을 보호해 준 것은 면갑도 다른 어떤 무기도 아닌 그들의 애국심이었다.
면갑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근세관 조선실 교체 전시품이다. 이외에도 금가루로 쓴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조선국왕이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보낸 외교문서 ‘표문(表文)’ 등을 소개한다.
푸른 종이에 금가루로 쓴 ‘대학장구’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사서(四書)의 ‘대학(大學)’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책이다. 조선시대 들어와 성리학이 중요시되면서 유학의 핵심 경전인 ‘대학장구’를 공경하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교에 갠 금가루로 푸른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은 불교의 경전을 베껴 쓰거나 부처를 그리는 등 매우 존귀한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공경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 두 개의 ‘표문’은 1827년(순조 27)과 1852년(철종 3)에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올린 것이다. 한자를 먼저 쓰고 끝에 청나라 문자, 즉 만주어를 함께 썼다. 표문에 찍힌 도장도 한자와 만주어를 함께 사용했다. 2일부터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