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일간경북신문

축구 페널티킥은 왜 11m 떨어져 찰까?..
스포츠

축구 페널티킥은 왜 11m 떨어져 찰까?

뉴시스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1/11/16 17:43 수정 2021.11.16 17:43
1890년 북아일랜드 출신 제안
프로선수 평균 성공률은 70%

지난 1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 축구대표팀과 아랍에미리트(UAE)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5차전 홈 경기 1대 0 승리를 이끈 건 전반 36분에 터진 공격수 황희찬(울버햄튼)의 페널티킥 결승골이었다. 


골대 불운 속에 황인범(루빈카잔)이 상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UAE 알리 하산의 발에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키커로 나선 황희찬이 오른발 슛으로 골키퍼를 속이고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한국은 UAE의 골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결국 황희찬의 페널티킥이 한국에 승점 3점을 안겼다.


'러시안 룰렛'으로 불리는 페널티킥은 축구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득점 루트가 된 지 오래다. 


상대 페널티박스 지역에서 반칙을 통해 페널티킥을 얻는 건 하나의 전술이 됐고, 수비수들을 이제 공격수를 막아야 함과 동시에 파울까지 조심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


▶페널티킥은 언제 생긴 걸까
축구에서 처음부터 페널티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상대의 만연한 반칙을 막기 위해 등장한 일종의 장치였는데, 흥미롭게도 이를 처음 제안한 건 공격수가 아닌 골키퍼였다. 


1890년 북아일랜드 출신 골키퍼 윌리엄 맥크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당시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선 이기기 위해 어떤 짓이든 저질렀다. 
수비수들은 위험 지역에서 실점할 위기에 놓이면 상대를 선수를 심하게 걷어차거나 손으로 공을 쳐 낸 등의 반칙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축구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하지만 수비수의 고의적인 핸드볼 반칙이 계속되자 이에 대한 개선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IFAB는 1891년 페널티킥 제도 도입을 승인했다.


축구 역사상 최초의 페널티킥은 1891년 9월14일 영국 울버햄튼의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울버햄튼과 애크링턴과의 경기에서 나왔는데, 당시 존 히스가 페널티킥을 차 성공했다. 울버햄튼은 황희찬의 현 소속팀이기도 하다.


▶페널티킥은 왜 11m 떨어져 찰까
페널티킥을 골라인으로부터 11m 떨어진 지점에서 찬다. 
잉글랜드축구협회가 12야드, 즉 10.97m 떨어져 차도록 했는데, 이것이 미터로 환산돼 통상 11m 지점으로 확정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페널티킥을 '11m 벌차기'라고 부른다.


11m를 이야기하기 전에 축구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숫자는 9.15m다. 킥오프, 프리킥, 코너킥, 페널티킥 등 축구의 모든 킥 상황에서 상대 선수는 공으로부터 9.15m를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는 선수 보호를 위해 생긴 규정이다. 시속 100㎞ 이상으로 날아가는 공에 맞으면 부상 위험이 커 안전하게 수비수와 간격을 벌려놓자는 의도였다. 
공을 처음 차면 초반에 힘이 실려 상당한 파괴력이 생기지만, 어느 정도 날아가면 공기 저항으로 인해 위력이 약해진다. 


바로 그 지점이 9.15m다. 이는 페널티박스 라인 밖에 아크 라인이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페널티마크로부터 9.15m 떨어진 위치를 선으로 이은 것이 아크 모양이 된 것이다.


9.15m는 축구 발상지인 영국에서 쓰는 야드 거리 개념으로 10야드에 해당한다. 이후 축구가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야드보다 미터를 쓰는 나라들이 더 많아 9.15라는 숫자가 더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페널티킥은 왜 9.15m가 아닌 11m일까. 페널티킥은 이론적으로 키커에게 매우 유리한 규칙이다. 


키커가 찬 공이 골대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0.4~0.5초로 골키퍼 반응 시간인 0.6보다 빠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프로 선수 기준으로 11m 지점일 때 70% 성공률이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최적의 거리다. 뉴시스

저작권자 © 일간경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