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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萬波息笛 만파식적 - 곧 다가올 세상은..
오피니언

萬波息笛 만파식적 - 곧 다가올 세상은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6/01 20:17 수정 2022.06.08 17:44

정 여 산<br><자유기고가>
정 여 산
<자유기고가>
작은 수술을 받았다. 어떤 이유, 관점에서 ‘작은’인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말하게 된다.
전신 마취가 아닌 국소 마취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진료를 마친 의사가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물었고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가 보기에는 그대로 둬도 되었나 굳이 환자인 내 입으로 제거해 달라는 말을 하게 했을 지 궁금했다.
수술 가운을 입고 링거 바늘을 꽂고 베드에서 대기하는 동안은 누구나 긴장이 된다. 먼저 수술을 마치고 누워 있는 환자와 간호사간 대화는 공포를 조장한다.
며칠을 입원해서 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의 얘기도 이런저런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17년 전에 내가 받은 치질 수술 환자인 듯하다. 한 번 받았는데 말끔히 해결되지 않아서 재차 수술을 해야 되는 모양이다. 인간의 육체란 참으로 불완전하고 나약한 것이로구나. 양팔을 이식하여 손녀를 안은 강철 의지의 인간이 새삼 존경스럽다.
내가 누워있는 베드에 먼저 누웠던 사람들은 퇴원했을까 죽어 나갔을까, 콘크리트 벽처럼 꺼칠한 모포를 끌어 덮으며 기도를 했다. 예정보다 길어지는 앞 수술로 담당의사 손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앞 환자 상태에 비해 내가 너무 가벼워 소홀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요구하는 수술도구를 간호사가 재깍 바로 알아들어 집도의 신경을 불편하지 않게끔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스마트폰 어플로 9년만에 나왔다는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었다.
잔잔하게 시작되는 도입부에서 ‘이런 내용을 쓰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렸나’ 하는 조바심이 났다.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아하 이런…’ 곧바로 섬뜩하고 대단한 작품이란 조짐이 느껴진다. 한반도 통일 이후 멀지 않은 미래 평양은 로봇연구에서 세계적인 메카가 되어 있다.
최 박사의 피그말리온 철이는 자신이 인간인 줄로 아는 최첨단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인간 복제 브로커가 만들어낸 클론 선이, 인도산 로봇 민이, 전 세계 로봇의 뇌를 클라우드로 연결하여 집단 기계지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달마. 인류 멸종을 예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가끔 ‘MZ 세대’와 일할 때 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은 유례가 드문 전통 파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남북전쟁과 군사 쿠데타, 광주 혁명, 6.29를 겪는 동안 우리는 이전 세대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아니 철저히 파괴하려는) 만행을 야멸차게 저질러 왔다. 4.19세대를 5.16동지들이 폄하하고, 신군부가 구세력을 매도하고, 이십대 남녀들이 펼치는 586청산 운동 등 이 땅에서는 어떤 종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전통도 계승, 발전하기 어렵다. 유럽이나 일본의 수백 년 넘는 전통 유지 현상을 보면 부럽다 못해 우리 현실에 화가 난다.
모든 하야 대통령이 감옥 가거나 죽어야 하는 나라에서 전통 보전을 기대하기 보다 울산바위가 굴러서 바이칼 호수에 빠지기를 바라는 게 차라리 낫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 앞날이 순탄할 지도 걱정이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의 세대 교체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며 때로는 무자비하다. 일본이나 중국의 젊은이들과 소통이 한국의 MZ세대와 소통보다 쉬울지 모른다고 느끼는 게 나 하나이길 바란다. 인사나 교육부서들은 MZ세대와 소통을 너무 겁을 냈고 서툴게 대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다 체계적으로 이들의 소프트 랜딩을 지원하면서 조직의 쓴 맛을 엄중하게 일러 주어야 했다.
무분별한 자기중심성향, 버릇없음, 어리광으로 조직들이 차례로 무너져갈 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힘을 잃어 가는 팀장, 부장들보다 임원들이 새내기들 눈치를 더 보게 되는 조직은 미래가 밝지 않다. 어쨌든 세상은 이들이 움직여 나갈 터인데 불확실성이 크다.
한편으로 자유분방하며 활기 넘치는 MZ 엘리트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염원해 본다.
기성세대들은 남아 있는 날, 다가올 날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 것인가. 첨단 IT환경에 익숙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부류들로 나누어지는 1700만 베이비부머들. 기계지능과 메타버스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인간성 보다 기계성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새로운 인류 ‘호모 데우스’들과 얼마나 공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물 인터넷과 클라우드 네트워크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초인류와 기계의 지배를 당하는 하등 인종이 펼칠 디스토피아에서 인류의 문화 유산이나 인간성 따위가 얼마나 유의미할 것인지. 플러그만 뽑지 않으면 죽지 않을 기계들은 불멸하는 신에 인간보다 훨씬 더 가깝다. “봄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김영하, 작가의 말)
끝이 있으므로 살아 있는 지금이 고귀하고, 육체를 소유하는 동안에 손으로 만져지고 피부에 와 닿는 감각을 누리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내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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