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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판단의 기술..
문화

포토에세이 : 판단의 기술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3/23 16:29 수정 2023.03.23 16:30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어촌계장 김만호 씨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돌미역 채취의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맘때의 돌미역은 바다가 주는 보너스다. 건조도 되기 전에 주문이 들어 올만큼 소문이 나있다. 작업 시기가 늦춰지면 돌미역의 품질이 떨어진다. 바다와 육지의 날씨가 관건이다. 그리고 해녀들의 일정도 맞춰야 한다. 마을의 해녀였던 분들은 팔순이 훌쩍 넘었고, 그 일을 이어받은 사람도 없다. 오래전부터 외부 해녀들에게 미역 채취 작업을 맡긴다. 일정을 잡아놓고도 기상변화에 따라 작업 유무가 바뀌기도 한다.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하지만, 바다날씨는 워낙 변덕이 심하니 어쩔 수 없다.
새벽에 어촌계장이 전화를 주셨다. 오늘 미역 작업을 한다는 목소리가 바쁘다. 미역 작업하는 날이면 자녀들은 고향에 와서 당연하게 노모의 일을 돕는다. 그날은 동창회에서도 못 보던 친구를 만난다거나, 동네 선후배의 안부를 듣게 되기도 한다. 부산한 움직임으로 마을은 여느 때보다 활기차다.
해가 뜨자 마을 앞바다에는 해녀들의 테왁이 징검다리처럼 떠있다. 잠수하는 횟수만큼 테왁 망사리에는 미역이 채워진다. 형광의 오리발들이 물 위로 만세를 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테왁에 몸을 지탱한 해녀는 숨비소리를 길게 내뿜는다. 바다와 해녀 사이의 은밀한 타협으로 진행되는 숭고한 의식 같다. 구경하던 나도 숨비소리를 따라 해본다. 휘파람도 한숨도 아닌 소리가 새어 나온다. 가득 채운 숨이 아니기에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는 걸까.
어선 한 척이 해녀들 쪽으로 다가온다. 작업한 미역을 실어 나르는 모양이다. 배는 방파제로 향했고, 나도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었다. 크레인에 매단 테왁 망사리에서 미역이 쏟아진다. 하역 작업을 하느라 여러 사람이 모였다. 주황색 조끼에는 ‘지경리 청년회’ 글씨가 또렷하다. 생각보다 마을에 청년들이 많다고 여겼다.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미역은 퍼덕이는 생물, 그 자체다. 청년회 조끼를 입은 그들도 기분 좋게 웃는다. 유난히 하얀 이가 드러나는 얼굴의 그들은 외국인이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어촌계장 김만호 씨가 다가왔다. 그들은 일용근로자들이며, 예전에는 집마다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분배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여의찮아 선택한 방법이란다. 미역을 분배받는 가구마다 일정한 경비를 내고 그들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일이 훨씬 효율적이라 만족스럽단다. 오늘 그들은 외국인 일용근로자가 아닌 지경마을 청년회 사람들이라 말한다,
변화하는 마을상황에 대처하는 그의 유연한 판단력이 빛난다. 그 판단의 기술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선하게 웃는 그의 눈에 지경 방파제가 들어온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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