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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날리는 꽃잎처럼..
문화

포토에세이 : 날리는 꽃잎처럼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4/09 16:40 수정 2023.04.09 16:41

벚꽃은 툭,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꽃을 피우기까지 버틴 시간이 바람에 묻어 허공으로 부유한다. 바닥으로 내려앉은 꽃잎은 바람 자락에 휩쓸려 나뒹군다. 그러다 구석진 곳에 지난 기억처럼 눌러앉는다.
벚나무는 여름부터 다음 해의 꽃눈을 만들기 시작한다. 잎이 떨어지면 털과 껍질로 단단히 감싸 긴 겨울을 난다. 묵묵히 감내하는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알까. 그래서인가. 겨우내 웅크린 꽃눈은 봄볕에, 바람에 거침없이 자라 삼월의 마지막 풍경을 점령하고야 만다. 하얗게 열정을 드러낸 벚꽃 행렬은 잔인하리만치 아름답다. 풍성한 가지마다 일주일 사이에 일제히 피고 진다. 한꺼번에 에너지를 쏟아 꽃을 피우는 때문인지 수명은 길어야 팔십 년이란다. 세상 어딘가 심어진 벚나무 한 그루쯤 나와 함께 태어나고, 나와 함께 생을 마칠 수도 있겠다.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지잉-’ 울린다. 지인이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셨다. 학생들을 앉혀놓고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이다. 교수는 수업도중에, 컵에 물을 따르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물이 든 잔의 무게가 얼마나 되겠냐고. 학생들의 추측은 다양했다. 200g, 300g… . 조용히 듣고 있던 교수는 말한다. 물이 담긴 한 잔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 잔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지에 따라 무게감과 고통이 더해진다고. 우리 삶 속의 스트레스와 걱정도 마찬가지라나. 짧은 시간 생각하면 별일 아닌 일도 조금 더, 그리고 오랜 시간 걱정하면 아프고 저려와 결국 마비가 오는 팔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그러고는 단호하게 전한다.
'물 잔을 내려놓으세요.'
마음에 느낌표가 여러 개 찍힌 기분이다.
이 봄, 꽃잎을 떨구는 벚나무가 눈앞에 있다. 묵묵히 감내하던 겨울의 기억 따위는 다 내려놓았다는 듯. 내려놓은 뒤의 홀가분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꽃잎이 날린다.
나무는 당연하게 잎을 피우고 남은 계절을 물들일 것이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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