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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초점..
문화

포토에세이 : 초점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7/09 16:19 수정 2023.07.11 14:06

아침부터 끈적거리는 습도는 무더울 날씨를 예고한다. 언덕을 오르는데 금방 땀이 흐른다. 평소 산악자전거로 단련된 유미코는 한참 앞서 걷는다. 저질 체력을 실감할 때마다 운동의 필요성을 꺼낸다. 번번이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언덕에는 나무 그늘을 찾을 수가 없다. 손차양하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가파른 곳에 개망초가 무더기로 피었다.
개망초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신혼 시절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세상 모든 것의 아름다움이 배가 되던 시기였다. 들에 핀 개망초를 꺾어다 화병에 꽂았다. 거실과 침실, 욕실에까지 두었다.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뿌듯했다. 남편은 얼른 치우는 게 나을 거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괜히 하는 말이라 여겼다. 다음날 그 웃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았다. 화병 근처에 꽃잎과 꽃가루, 진딧물까지 떨어져서 엉망이었다. 애쓰며 피었을 꽃을 꺾어다 낭패를 보았다. 유미코에게 지난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며 공감한다.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저렇게 예쁜 꽃을 왜 ‘개망초’라 이름 붙인 건지 모르겠단다.
개망초는 일제 침략기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이 놓은 철도를 따라 흰 꽃이 사방에 핀 것을 보고,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잡초 씨를 뿌렸다 하여 망국초, 망초라 부르게 되었다. 그 망초가 밭농사를 방해한 탓에 나라가 망했다고 여겨 개망초라 한 설이 있다. 유미코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저 꽃 핀 모습이 계란을 닳았다 하여 '계란꽃'이라 부르며, 우리나라 들판에 가장 많이 분포된 꽃이라는 것, 오히려 생태환경 측면에서 보면 개망초는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만 말했다. 어색해질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서로 조심스러운 부분은 피한다. 아마 유미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초점이 개망초에 맞춰지자, 수평선으로 나뉘었던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다. 유미코가 선택한 한국행의 초점은 오로지 그녀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더러는 아웃 포커스였던 배경에 초점을 맞춘 적도 있었으리라. 기쁨과 단란함 속에도, 부딪히고 생채기가 나고 아파한 시간을 지내왔을 그녀. 한국에 온 지 삼십 년 가까이 흘렀단다. 그녀가 행복했는지는 모른다. 이제는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하단다. 빙그레 웃는 모습에서 순응의 내공을 느낀다. 이제 그녀의 가족사진에 국적은 희미한 배경일 뿐이다. 개망초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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