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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수고하셨습니다..
문화

포토에세이 : 수고하셨습니다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7/23 17:17 수정 2023.07.23 17:18


솔숲에서의 예술축제 소식을 막바지에 들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서둘러 갔다. 솔숲으로 들어서다가 멈칫하고 만다. 나무 사이에 매달린 샹들리에 전구마다 불이 켜졌다. 리본으로 장식된 긴 탁자에는 촛대가 놓여있다. 유럽 중세 시대 궁중에나 사용했을 법한 것들이다. 화려한 꽃장식과 하얀 접시들도 보인다. 접시에는 음식이 아닌 각양각색의 작품이 담겼다. 소인국의 파티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미니어처의 정교하고 감각적인 모양에 빠져들어 한참을 살폈다. 숲은 조용하고, 소나무 사이로 작품들을 보물찾기하듯 한다. 기울어 세워진 긴 의자와 금속 조형물들이 나무들과 어우러진다. 고정된 설치물과 부산히 움직이는 진행요원의 모습이 묘하게도 하나의 작품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낡은 건물 앞, 줄에 널린 티셔츠들이 시선을 끈다. 빨강과 노랑, 흰색, 검은색의 티셔츠가 몇 겹으로 나란하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가까이 가보니 ‘화려한 축제의 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축제 일꾼들의 노동을 티셔츠들이 대신 기억한다.’고 적혀있다.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하다.
몇 해 전 영화관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엄마와 같이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며 딸이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다. 영화는 나와 딸아이의 중간세대쯤으로 설정되었다. 주인공을 통해 딸아이는 엄마로서의 나를 이입시켜 울먹였고, 나는 주인공을 보며 딸이 겪게 될 엄마로서의 시간에 안쓰러운 공감으로 울었다. 영화가 끝나고 옆자리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과하다 싶을 만큼 내내 흐느끼던 아주머니였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그녀가 더 무안해했다. 일어서려는데 딸아이가 내 손을 잡아 앉혔다. 눈으로 왜? 라고 말하는 내게 아이가 귓속말 했다.
“엄마, 엔딩 크래딧이 남았잖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이름도 읽어줘야지. 스크린에 보이는 배우가 다는 아니니까. 그러니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앉아 있자고요.”
서둘러 나갈 생각만 하던 나는 부끄러웠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생각하는 딸아이 가 부쩍 커보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나간 뒤에야 일어섰다. 그 후로 집에서 영화를 봐도 엔딩 크래딧까지 보게 된다. 사실 이름을 다 읽지 못한다. 글씨가 너무 작고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다. 가려진 수고에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지만, 애썼다며 조용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차릴 것이다.
티셔츠 하나하나 살핀다. 축제 일꾼들의 이름을 읽기나 하듯이. 어디, 영화와 축제뿐일까. 곳곳에 드러나지 않는 수고가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무언가의 뒤편에서 수고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공감은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수고하셨습니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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