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부동산 등기를 직접 신청한 경험이 있다. 등기소에는 오전 1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그런데 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가 몇 개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0여년 전에 다른 등기를 하면서 했던 실수를 이번에도 똑같이 한 것이다. 아직도 부동산 등기는 혼자서 하기에는 좀 복잡한 일인 듯 하다.
빠진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근처 동사무소에 갔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동사무소 입구에는 점심시간에는 민원실 휴무라는 안내가 있다.
결국 점심 식사를 하고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1시가 넘어서 서류를 발급 받았다. 이후 법원에 가서 다시 접수를 하고 대기시간을 거쳐 서류를 제출하니 오후 3시 가까이 되었다. 이후에 간단한 은행 일을 몇 개 하니 다른 일은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은행일은 굳이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관공서를 거쳐야 하는 일을 할 때 도중에 점심시간이 걸리면 일정이 꼬이게 된다. 점심시간에 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날 당초의 계획은 등기 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몇 개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끼어버리는 바람에 등기신청을 하는 일에 시간이 너무 걸렸다. 점심시간이 없었다면 등기 신청을 오후 1시 이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면 오후에 활용할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직장인은 근무시간에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낸다. 그런데 어렵게 휴가를 내고는 한 가지 일만 하기에는 아깝다. 특히 통장재발급 같은 사소한 은행 일을 위해 별도로 휴가를 내기는 그렇고 다른 일로 휴가를 낼 때 몰아서 한다.
하지만 출근할 때와 달라 휴가 중에는 마음이 느긋해진다. 나도 이날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고 10시 넘어서 집을 나선다. 분명 좀 더 일직 시작했더라면 오전 중에 등기신청을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관공서의 민원업무를 하는 사람은 점심시간에도 교대로 근무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 밖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배려의 차원이었다. 특이하게 병원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을 활용하려는 직장인을 잡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원처리를 하는 직원도 사람이다 점심시간을 지킬 권리가 있다. 그래서 외부 기관을 찾아가는 일정을 잡을 때 보통 오후 2시에 약속을 잡는다. 점심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다. 식사약속이 아니면서 점심시간에 일하는 장소에 방문하는 것은 실례다. 그렇다고 오전에 방문하면 곧 다가올 점심시간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전 방문도 피하게 된다.
요즘 전산 시스템이 발달하니 비대면 업무처리가 발달하기도 한다. 은행이나 관공서 서류발급은 전산으로 자동발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처럼 전산 실력이 어정쩡한 사람을 위해서는 아직 대면업무가 필요하다. 은행업무도 단순 입출금이나 송금이 아닌 업무는 창구에 가야 한다. 한때 사무실에서 전산관련해서는 최첨단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들은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컴퓨터에 뒤처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 보다는 전산 환경의 변화속도가 더 빠르니 어쩔 수 없다.
여담으로 관공서에서 점심시간을 준수하는 것은 선진국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때문에 불편한 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불편함을 찾는 것도 선진시민의 덕목이다.
예전에 캐나다에 갔을 때 관공서 서류 발급이라든가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편했다. 무조건 선진국이 좋다고만 생각했던 이전의 생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가이드에 의하면 삶의 질과 편리함은 다르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도 익숙해지면 점심시간에 서류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어정쩡한 세대를 위한 배려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