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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신록과 가로수 잎..
신재일 칼럼

신록과 가로수 잎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5/05/19 15:59 수정 2025.05.19 16:00

강산이 푸르러지는 5월이 되니 도시도 푸르름으로 가득찼다. 도심의 거리에 있는 가로수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도로변에 심겨진 플라터너스 나무잎은 맹렬한 기세로 무성해지고 있다. 플러터너스 잎은 다른 가로수 잎과 비교하면 빨리 자라는 것 같다.
『신록의 푸르름이 나날이 더해가는 5월』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예전에 행사장 가면 높은 사람의 인사말에서 많이 들었다. 신록(新綠)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을 말한다. 그래서 늦봄인 5월을 신록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신록은 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5월이 되면 산에 자라는 나무에는 푸른 나뭇잎이 나오고, 바닥에는 푸른 풀이 자라면서 신록이 된다. 신록의 계절에는 산불이 줄어든다. 갓 돋아난 나뭇잎이나 풀에는 물이 많이 올라서 불에 잘 타지 않고 불이 나더라도 빨리 퍼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우리를 괴롭힌 산불의 염려를 놓고 이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5월에는 산불이 나지 않더라도 산에 잘 오르지 않는다. 날씨가 더워졌기 때문에 매니아가 아니면 등산을 포기한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은 이미 지난 것이다. 그리고 신록을 보러 산에 갈 필요가 없다. 가로수 때문이다. 5월에는 가로수의 나뭇잎도 잘 자라게 된다.
12층인 우리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거리를 보니 푸른 잎이 길을 점령하면서 숲속의 도시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런 모습이 연출된다. 길거리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동네의 가로수가 잎이 무성한 수종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무성한 가로수에 둘러 쌓인 건물들을 보며 5월의 신록과 연계시켜 생각해보았다.
학생시절 식물이 본격적으로 자라는 시기는 녹음기(綠陰期)라고 배웠다. 1년 내내 식물이 잘 자라는 열대우림 지역과는 달리 온대지역인 우리나라에서 녹음기가 따로 구분된다. 당시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녹음기에 간첩이 침투하기 쉬우니 간첩신고를 철저히 하라는 군부대의 홍보를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간첩이 숲속에 숨어서 침투하지는 않을 것 같고 과거처럼 학생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기에 녹음기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가로수는 도로나 인도에 맑은 공기나 시원한 그늘 제공, 미관 개선 등을 목적으로 심는다. 가로수도 녹음기에 잎사귀가 풍성해진다. 가로수가 숲을 이루면 도시림이 되는데 도시의 공기를 정화시키고 온도를 낮추어 열섬효과를 줄이도록 해준다.
특히 대구는 30년 전부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으로 거리에 가로수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가장 무더운 도시라는 악명을 씻었다고 한다. 도시숲의 효과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도시같다.
가로수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가로수 잎이 가로등을 가리면서 거리를 어둡게 한다. 가로수가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가을만 되면 가로수 때문에 낙엽과의 전쟁을 펼쳐야 한다. 떨어지는 낙엽으로 거리가 지저분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 동네도 지난해 연말부터 낙엽으로 길거리가 오랫동안 지저분한 상태로 있었다.
청소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낙엽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국에서도 가로수 관리에 나선 것 같다. 지난 초봄에 가로수 가지치기를 했다. 그러나 가지를 너무 심하게 잘라내어 줄기만 흉측하게 남은 나무도 있다. 여기에 올해 난 잔가지와 듬성듬성 난 잎들만 있어 볼품이 없었다. 마치 전봇대에 나뭇잎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런 가지치기를 두절(Heading Cut)가지치기라고 했다. 나
무의 높이를 줄이거나 가지의 길이를 단축시키는 것인데 나무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산에 가지 않아도 무성하고 푸른 나뭇잎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 사는 도시인의 정서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편익 때문에 가을에 낙엽으로 거리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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