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이 당정청 협의 테이블에 오르면서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단체 전반에서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 14년 만에 규제 틀을 손볼 가능성이 거론되자, 산업 구조 개편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5일 정치권과 유통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전날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에서 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여부를 논의했다. 현행법은 대형마트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정청은 전자상거래의 경우 해당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조항이 입법화될 경우 대형마트 역시 온라인 주문을 통한 새벽배송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민주당 내부에선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당 핵심관계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해 특정 이커머스 기업의 독주를 키운 측면이 있다”며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라고 설명했다.
반면 당내 일부 의원들과 진보 성향 지지층에서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 한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까지 새벽배송에 뛰어들 경우 전통시장과 동네 상권은 사실상 생존이 어렵다”며 “규제의 역사적 취지를 훼손하는 방향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권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명분 아래 또 다른 규제 혼선을 만들고 있다”며 “쿠팡을 겨냥한 듯한 정책 시그널이 유통 전반의 불확실성만 키운다”고 비판했다.
다만 경제계와 유통업계는 대체로 환영 분위기다.
대형마트 업계는 “오프라인만 묶어두는 규제는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지 오래”라며 “동일한 상품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법 적용이 달라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새벽배송 허용은 곧바로 오프라인 매장 영업 확대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온라인 물류 경쟁력 확보 차원”이라며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가격 경쟁 촉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중견 유통업체와 물류업계에서도 “이커머스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는 데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쿠팡 중심으로 재편된 새벽배송 시장에 경쟁자가 늘어날 경우 배송 인프라 투자와 고용 구조도 다변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다.
전국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은 전통시장 보호라는 법 제정 취지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라며 “온라인까지 대기업이 장악하면 지역 상권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지 기반인 노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류·배송 노동조합 측은 “새벽배송 확대는 결국 야간·새벽 노동의 상시화를 의미한다”며 “쿠팡의 과로·안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시장만 넓히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단체는 “차라리 쿠팡을 포함한 모든 유통업체의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당정청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참석자 중 A위원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정책은 아니다”라며 “독과점을 경계하면서도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방향이 기본 취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 추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여하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는 단순히 ‘새벽배송 허용’ 여부를 넘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전통시장 보호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치권의 선택이 유통 생태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