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구·문방사우·현대회화
빠르게 소비되고 끊임없이 비교되는 시대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깊이를 쌓아갔던 옛 선비들의 시간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글로컬대학 대구보건대학교(총장 남성희) 보현박물관은 29일 오후 3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기획전《爲己之學(위기지학)》을 개최한다.
전시는 2027년 2월 26일까지 경남 밀양시 단장면 보현연수원 내 보현박물관에서 이어진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배움이 아닌, 자신을 수양하고 삶을 단단하게 다듬기 위한 학문을 뜻한다.
권력과 명예보다 학문의 깊이와 인격의 완성을 추구했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조명하는 이번 기획전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삶의 태도와 사유의 가치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전시장에는 선비의 정신세계가 응축된 유물 72점과 묵향(墨香)이 가득한 현대회화 12점 등 총 84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사방탁자와 책장, 의걸이장, 서안형 머릿장 등 선비들의 생활이 깃든 목가구를 비롯해 연적과 문진, 필세(筆洗,먹이나 물감이 묻은 붓을 씻는 그릇), 필산(筆山,붓을 세울 수 있는 도구) 등 문방 관련 유물들이 전시된다.
또 외출 시 사용했던 휴대용 먹통과 붓, 소매 속에 넣고 다니던 수진본(袖珍本, 소매 속에 넣고 다니는 작은 책), 호패와 장도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선비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학문과 풍류를 자연스럽게 실천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 한편에는 이동엽의 <사이(間) Interspace>, 윤형근의
, 오수환의 <谷神>, 이배의 등 묵향이 짙게 배어 있는 현대회화 작품도 함께 자리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공간과 현대 미술이 한 전시장 안에서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깊은 사유의 시간을 완성한다.
특히 전시는 선비의 내면세계가 머물던 ‘사랑방’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은 고요한 공간 안에서 유물과 회화를 함께 마주하며,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보현박물관이 자리한 밀양은 오랜 시간 선비 문화와 자연 속 수양의 전통이 이어져 온 지역이다. 박물관은 이러한 지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삶과 예술, 사유가 공존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정 보현박물관 관장은 “이번 기획전은 선비들의 유물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학문이 하나였던 그들의 태도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마주해 보는 자리”라며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삶의 속도와 마음가짐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보현박물관은 밀양 보현연수원 내 위치한 지상 2층 규모의 문화 공간으로 조각공원과 야생화정원, 수공간 등을 함께 조성해 지역민과 연수원 이용객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는 무료로 운영되며, 대구보건대학교 보현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
박경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