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제정된 바다의 날은 신라 장보고가 청해진을 열어 동아시아의 바닷길을 개척했던 해양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념일이다.
국가가 바다를 기념일로 삼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바다가 곧 이 나라의 생존이었음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며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나는 오늘 영도 바닷가에 서서 333년 전의 한 사내를 생각한다.
조선 숙종 19년, 1693년의 일이다.
울릉도 근해에서 왜인들에게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용복이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국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당당히 주장했고 일본 측의 확인을 받아낸 뒤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여 처음 닿은 곳이 바로 이 부산 영도 앞바다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해양수도를 꿈꾸는 이곳 영도는 우연한 장소가 아니다.
안용복이 독도를 지키고 돌아온 귀환의 땅이며 해방 후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 해양대학이 자리한 곳이고 역대 대통령들이 바다를 이야기하기 위해 찾았던 해양주권의 상징 공간이다.
그러나 귀환한 그를 기다린 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초량왜관의 관수(館守)가 그를 붙들었고 조선 조정은 그를 동래부로 압송했다.
나라가 지키지 못한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 영토를 지켜낸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처벌이었다.
그는 꺾이지 않았다. 3년 뒤인 1696년, 그는 다시 바다를 건넜다.
울릉도에서 조업하던 왜인들을 몰아내고 일본 관리들에게 다시 한번 두 섬의 귀속을 따졌다.
그 목소리는 결국 역사를 움직였다.
일본 막부는 조선 조정에 울릉도 도해금지를 공식 통보했고 두 나라 사이의 길고 지루한 분쟁은 그렇게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훗날 '울릉도쟁계'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안용복은 분쟁 해결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인물이었다.
2005년 일본에서 발견된 「원록각서」는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증명했다.
이 문서는 당시 일본 관리들이 작성한 공식 기록으로 훗날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의 법정으로 향하게 된다면 17세기 말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안용복을 기다린 것은 다시 유배형이었다. 남구만을 비롯한 조선 조정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정은 왜국과의 외교 교섭을 지속했고 도해금지를 국가 간 공식 문서로 확인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은 백성의 행동은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 논리는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차갑고 너무 엄격했다.
국가가 끝내 한 사람의 헌신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다.
333년이 지난 오늘, 부산은 스스로를 해양수도라 부른다.
세계적인 항만과 조선산업, 해양금융과 해양교육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올해 바다의 날 기념식도 이곳 영도에서 열렸고, 국가는 다시 한번 해양강국의 미래를 선언했다.
그러나 해양수도는 항만 물동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 바다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는 도시여야 하며 해양주권의 역사를 후세에 가르치는 도시여야 한다.
일본은 도쿄 한복판에 영토주권전시관을 확대하며 역사와 영토 문제를 국가 전략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국제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발신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독도는 도발이 있을 때마다 잠시 뜨거워졌다가 다시 잊혀지기를 반복한다.
독도는 단지 경북 울릉군의 행정구역이 아니다. 대한민국 해양주권의 상징이며, 동해를 지키는 최전선이다.
바다의 날은 장보고만을 기념하는 날이어서는 안 된다. 안용복을 함께 기억하는 날이어야 한다.
장보고가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바다를 경영한 인물이라면 안용복은 국가의 지원 없이 홀로 바다를 지킨 사람이었다.
두 사람을 함께 기억할 때 비로소 이 나라의 바다 정신은 완성된다.
안용복이 돌아와 처음 발을 디뎠던 영도에서 이제 그의 정신을 현창(顯彰)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독도의 역사와 국제해양법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거점을 만들고 청년들이 해양주권의 가치를 배우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333년 전 이 바다에 쓸쓸히 닿았던 안용복에게 뒤늦게 건네는 역사적 사면(赦免)이다.
바다의 날마다 우리는 바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용복은 아직 귀양살이 중이다.
그가 처음 돌아왔던 영도가 그의 이름을 온전히 기억하는 날, 우리의 바다도 비로소 온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