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한 농지 전수조사가 충분한 준비와 정책적 방향 설정 없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나왔다.
특히 농민들은 이번 조사가 단순한 불법 농지 적발과 처분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경우 고령 농업인의 생계와 재산권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조사에 앞서 국가 차원의 농지 관리 원칙과 향후 제도 개선 방향부터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6일 「농지 전수조사, 서두른 만큼 놓친 것들」이라는 제목의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통해 농지 전수조사가 충분한 준비와 정책적 숙고 없이 추진되면서 현장의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초 농지 전수조사에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작성된 '2026년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도 농지 전수조사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 이후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전수조사를 급히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이다.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부터 드러났다.
당초 조사 착수 당시 115만㏊였던 조사 대상 면적이 기본조사에 들어간 이후 21만㏊, 18.3%나 늘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를 두고 충분한 준비 기간과 정교한 설계 없이 조사가 시작됐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조사 대상이 크게 늘었음에도 기한 연장 없이 기본조사를 완료하면서 조사 품질과 정확도가 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농민 입장에서는 조사 자체보다 향후 절차가 더 큰 부담이다.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소명과 확인, 처분 등의 절차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 농업인이 많은 농촌의 현실을 고려할 경우, 단순히 서류상 소유·이용관계만으로 농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농지를 소유한 농업인의 상당수가 고령층인 데다 농지가 자산 가치와 금융의 기초이자 행정상 자격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아 농지 소유와 이용에는 복잡한 현실적 사정이 얽혀 있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일률적으로 문제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국회입법조사처의 판단이다.
보고서는 농지법제가 이미 어느 하나의 원칙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진 만큼, 어떤 농지 이용을 정상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어떤 상태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할 것인지부터 섬세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촌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전수조사=불법 농지 색출'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농지 전수조사의 목적을 '농지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농지 제도 정비'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현장 농민들은 여전히 단속과 적발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정부가 최근 적극적인 해명과 소통에 나서고 있지만, 그동안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사실상 방치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통계를 선택적으로 인용해 전수조사의 효과를 단정하거나 농촌 현장의 충격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농정당국의 태도 역시 현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농지 전수조사를 단순한 '위법 농지 색출 사업'이 아니라 농지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선 정부가 2024년 1월 농지법 개정으로 도입됐지만, 아직 수립하지 않은 '농지의 관리에 관한 기본방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가 어떤 농지를 어느 정도 보전하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큰 방향이 먼저 제시돼야 전수조사 역시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농지 소유와 이용 제도를 앞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농지 이용의 증진과 합리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수조사 과정에 농지위원회의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내년부터 법정기구화되는 농업회의소와 연계해 지역 중심의 농지 행정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농민을 단순히 조사받는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농지 정책의 당사자이자 지역 농정의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전수조사를 단순하게 위법 농지의 색출이나 처분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은 국가가 파악하고 시장의 각 주체가 확인한 농지를 우리 사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농업 구조와 생산 양식에 부합하는 공공질서 안에서 어떻게 관리해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농촌 현장에서 이번 전수조사에 요구하는 것도 결국 '속도'보다 '예측 가능성'이다.
농민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기존 농지 이용 가운데 무엇이 제도 변화의 대상이 되는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농민에게 어떤 보호 장치가 마련되는지를 정부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수조사가 농민들의 불안과 재산권 침해 우려만 키우는 '적발 실적' 경쟁으로 끝날 경우, 오히려 농촌의 행정 불신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