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영국 만의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1일부터 내한공연한 중국 국가화극원의 연극 '리차드 3세'(理査三世)가 증명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했다. 중국어로 공연하고, 중국 풍의 의상을 입는다고 현지화 또는 현대화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현명한 작품이다.
원작 '리처드 3세'는 실존 인물인 영국 요크 왕가 최후의 왕인 리처드 3세를 다룬다. 왕위를 찬탈코자 친족을 살해하고 조카를 폐위시키는 등 악랄하게 그려졌다. 이후 무대에 오른 대다수 연극에서도 장애가 있는 음흉한 야심가로 등장한다. 무대 한가득 에너지가 채워질 듯하다.
중국국가화극원의 '리차드 3세'는 그러나 중국 고대 연극 형식이나 셰익스피어의 시대처럼 비워낸다. 그러니 리처드 3세의 본질 투명하게 더 보인다. 예전에 장애를 앓거나 추악한 모습의 리처드3세가 아니다. 왕시아오잉(王曉鷹) 연출은 잘생긴 배우인 장둥위를 리처드 3세 역으로 캐스팅해 그런 인식을 지워냈다.
대신 친형인 클래렌스 공을 살해하고 형수인 앤 부인과 정략결혼을 감행한 후, 왕위 찬탈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내면은 더없이 추악해진다. 내면에서 음모와 질투가 폭발할 때 겉모습의 화려함은 그 안의 추를 극대화한다.
얼마나 그로테스크한 줄타기인가. 악사 한 명이 타악기 위주로 서른 개의 악기를 연주하며 조절하는 극의 이완은 긴장감을 외줄에 태운다.
앤 부인, 웨일즈 왕자, 마녀 등 1인 3역을 맡은 장신을 비롯해 중국 국가경극원 소속 배우 3명을 캐스팅, 중국의 전통 연극 방식인 경극의 요소를 도입한 건 극의 환기에 안성맞춤이다. 예컨대, 리처드 3세가 무조건적이고 달콤한 말로 앤 부인을 꼬드길 때가 대표적이다. 그의 말과 행동에 다소 과장되고 앙칼진 목소리로 반응하는 앤 부인의 경극 연기는 삶 자체가 연극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국립극단은 2011년 국가화극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2012년 '로미오와 줄리엣'(연출 티엔친신)을 함께 제작한 바 있다. 지난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리차드 3세'와 교환 형식으로 10월 중국에서 공연한다. '리차드 3세',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만 13세(중학생)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