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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할머니가 될때까지 달리고 싶어요"…권은주의 달리기 2막

운영자 기자 입력 2016/06/20 15:11 수정 2016.06.20 15:11
▲     © 운영자


 

 세계 육상의 변방인 한국에서도 마라톤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다.
멀리는 故 손기정 선생의 가슴 아픈 올림픽이 있었고, 1990년대에는 황영조(46)와 이봉주(46) 등이 투혼의 레이스로 온국민의 시선을 아스팔트 위로 끌어 모았다.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여자 신기록을 수립한 권은주(39)의 이름도 빠질 수 없다.
 권은주는 1997년 10월 조선일보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6분12로 결승선을 통과해 오미자가 1년 먼저 작성한 2분30초09의 한국 기록을 새로 썼다. 이후 19년이 흘렀지만, 권은주는 여전히 42.195㎞를 가장 빨리 달린 한국 여성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아식스 강남직영점에서 한국 마라톤의 전설을 만났다.
작달마한 체구에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으로 달린다는 점이다.
 "회사원과 똑같다"고 스스로를 표현한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아식스 러닝클럽의 지도자로 제2의 달리기 인생을 살고있다.
"기록 보유가 원망스럽기도"…부상 고난 딛고 17년 선수생활
권은주는 "나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했다. 고교시절 동기생들 사이에서도 3위권에 그쳤다. 1995 코오롱육상팀에 입단했지만 소위 말하는 '간판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1997년 춘천마라톤을 기점으로 단번에 한국 마라톤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우리 팀에는 그 유명한 황영조와 이봉주가 있었다. 온통 그쪽으로 쏠리던 관심이 갑자기 나한테로 와서 굉장히 얼떨떨했다"고 돌아봤다.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묘령의 선수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당시 기록은 여자 월드 랭킹 톱 10에도 들어 이슈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게 내 기록이라고 인정해줄까 걱정이 됐다"며 "마음껏 기뻐해도 됐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고 회상했다.
 빛나는 타이틀은 부담의 다른 이름이었다. 선수생활 내내 자신의 기록과, 또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다. 권은주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다. 특히 부상 이후 그냥 다시 뛰는 것이 행복했는데 '기록 경신'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국 기록을 가진 것 자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부상으로 인한 고난까지 겹쳤다.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쉴틈 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계속했다"는 그는 "1997년 동계훈련 때는 발이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결국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보스턴마라톤을 포기해야했다.
 일본을 찾아 수술까지 받았지만 부상 공백은 생각보다 길었다. 2년 뒤에야 1999년 중앙일보하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31분33초의 기록으로 국내 최정상 자리를 탈환했다. 권은주가 기억하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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