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형 박사 © 운영자
“‘정신과 의사 생활을 오래 하더니 드디어 실성했구나’라는 소리만 안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 유언장을 뒤적거리던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80) 박사는 여든이 되는 해를 맞아 '가장 못 하는 것'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단 한 번도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리지 못했던, 또래보다 턱없었던 그림 실력이 떠올랐다.
“저 같은 사람을 스무 명 모아서 김양수 화백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역시나 잘 안 되더라고요. 진작 결론을 냈었죠. '난 역시 안 돼'라고요.”
‘가장 못 하는 게 그림’이었던 사람 중에서도 이시형 박사의 그림 실력은 남달랐다.
좀처럼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이시형 박사는 공을 들여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들의 최종 목적지는 휴지통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낙담했다. 모임을 주도했고, 여든의 나이에 용기를 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못하는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휴지통에 버리려는 그림들을 선생님이 가지고 가더라고요. 그리고 모임 회원들을 상대로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잘 그린 그림이 있고 좋은 그림이 있다. 회원들의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이고, 이 박사의 그림은 누가 봐도 엉터리 그림이지만 이야기가 있다’고 해주셨죠. 그리고 사태가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제일 못하던 게 그림”이라는 이시형 박사가 문인화를 엮어 책 ‘여든 소년 산이 되다’(이지북)를 펴냈다. ‘비움, 소년, 채움, 산’ 등 4개 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이시형의 그림과 생각이 담겼다. 그는 ‘유년기의 이시형’‘사랑을 간직한 남자 이시형’ 등으로 책에서 묻어난다.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시작된 문인화 작업은 그를 치유했다.
문인화를 ‘훌륭한 치유적 예술’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다. “보는 눈이 달라지고 깊이가 생겼어요. 무얼 보더라도 자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자연이고 인간이고 어느 하나 소홀하게 볼 수 없는 거죠. 가깝게 느껴지고, 그게 제게 일어난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문인화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침울한 국민들의 정서에도 문인화가 역할할 수 있다고 본다. “양적인 성장과 탐욕이 세월호 침몰 참사 같은 일을 야기한 거라고 생각해요. 양적인 성장이 아니고 질적인 성숙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문인화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심성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질적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겁니다. 문인화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보급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