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그랜드호텔
“친구 방아무개는 8월15일 328고지에서 전사했고, 선임하사 김아무개도 같은 곳에서 8월21일 포탄에 맞아서 전사했고… 전쟁이 끝나고 친구 시신이라도 수습하려고 갔더니 산 하나가 백골로 뒤덮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지…”
2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MAKRI) 주최로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6·25 참전용사 초청 유해 발굴 증언 청취 및 사업설명회’에서 만난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부회장 황대형(84)씨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씨는 1950년 6월25일, 1사단 15연대 3중대의 분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같은 해 8월13일,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경북 칠곡 가산면‘다부동 전투’에서 그의 부대원 120명 중 19명만이 살아 남았다. 19명 중에서도 현재 생존자는 단 3명이다.
전쟁 당시소대장이었던 박종우(87)씨는“눈 감았다가 뜨면 이 친구가 쓰러져 있고, 또 감았다가 뜨면 저 친구가 쓰러져 있었다”면서“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의 전우가 목숨을 잃었는데 유해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 아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땅 속에 묻혀있는 유해는 무려 13만4000여 구에 달한다. 지난 2007년 유해발굴감식단이 국방부에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유해발굴사업이 착수됐으나 2014년 현재까지 발견된 국군 유해는 8700여 구에 그쳤다. 이 가운데서도 유족의 품으로 돌아간 호국용사의 유해는 고작 91구뿐이다.
전쟁 당시 인식표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유해를 발견하더라도 국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다 유해가 묻혀있는 곳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유해발굴감식단은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터를 지목해 정밀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처음 실시된‘6·25 참전용사 유해 발굴 증언 청취 사업 설명회’는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지역인 대구에서 이날 세 번째로 개최됐다. 설명회에는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회원들을 비롯해 참전용사 6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