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레전더리픽처스와 워너브러더스픽처스의 합작영화‘고질라’는 어림잡아 1억6000만달러(약 16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초대작이다. 1954년 일본 도호사가 만든 혼다 이시로 감독의 영화‘고질라’로 탄생한 괴수영화 시리즈의 6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이 리부트 영화의 감독은 영국의 신예 개럿 에드워즈(39)다. 시각효과전문가로 10여년동안 활동하며 BBC TV다큐멘터리 영화‘히로시마’(2005)의 디지털 아티스트로 영국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장편데뷔작인 독립영화‘괴물들’로 호평 받으면서 단숨에 할리우드 대작 감독으로 올라섰다. 에드워즈 감독은 기존에 나온 28편의‘고질라’프랜차이즈 영화를 섭렵, 연구해 결정판을 만들어내겠다고 자신했다.
무명에 가까운 감독이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떠맡은 것은 기획, 각본, 스토리, 제작 등의 능력자들이 받쳐줘서 가능했다.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일본의 참여다. 도호사가 간여해 반노 요시미츠와 오쿠히라 켄지가 총제작자로 합류했다. 반노 요시미츠는 컬트영화가 된‘고질라 대 헤도라’(1971)를 감독하고 공동집필한 경력의 베테랑 영화제작자다.
이들의 힘을 모아 영화가 짜임새 있어졌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또다른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었던 롤랜드 에머리히(59)의‘고질라’(1998)가 오락성에만 치중해 괴수의 난동에 초점에 맞춰 실망을 안겼다면, 원작이 가진 핵심을 잃지 않으며 요즘 세태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지구자정론부터 가족애까지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다보니 고질라의 위용과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타이틀롤인 고질라의 출연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괴수영화, 재난영화, 히어로영화, 전쟁영화, 공포영화, 가족드라마 등 온갖 요소가 혼합돼 육해공을 휘젓는 것이 종합선물세트 같다. 감독이 시각효과전문가인만큼 비주얼도 거슬리는 부분이 그닥 없다.
원작에서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패망한 지 9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태평양 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미군의 수소폭탄 실험에 의해 괴물이 돼 깨어났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 있었던 사건들이 고질라와 또다른 괴수 무토라는 대형괴생명체들과 관련된 것이라는‘음모론’적 각본으로 영화적 현실을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지구에 방사능 수치가 지금보다 10배 이상이었을 때 존재했던 괴물들이 핵발전소에 의해 깨어난다는 설정, 태평양 비키니섬으로 추정되는 곳에서의 원자폭탄 실험이 사실은 괴물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였다든가, 1999년 필리핀 쓰나미와 일본 대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 괴물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 등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본 괴수영화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도입부부터 배경, 괴수끼리의 싸움에서 지난해 개봉한‘퍼시픽 림’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비오는 밤, 연안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크기의 크리처들의 다툼은‘퍼시픽 림’을 베껴온 듯하다. 아마도 이러한 배경이 현 기술상 CG물에서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한다.‘퍼시릭 림’역시 레전더리픽처스에서 제작했으며, 한때‘퍼시픽 림’의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50)가‘고질라’ 리부트를 맡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퍼시픽 림 자체가 환태평양이라는 뜻인데, 무토와 고질라가 활약하는 지대자체가 환태평양이다 보니 그런 기시감이 더하다. 역대 괴수중 가장 크다는 100m가 넘는 키의 고질라와 그에 상응하는 박쥐와 거미의 결합체같은 무토들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와 하와이, 일본열도, 필리핀제도를 종횡무진하며 초토화시킨다.
괴수들을 무찌르는 군사작전에 투입되는 해군대위 포드 브로디(애런 테일러 존슨)이 인간 주인공이기는 하나 이 영화가 관통하는 주제의 열쇠는 일본인 박사 이시로 세리자와(와타나베 켄)가 쥐고 있다. 이 괴수들에 대응해 세계를 아우르는 모나크 작전을 이끄는 과학자로서는 뜬금없이 도인과 같은 자세로 돌변해“인간은 자신들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고지라’가 자연의 균형을 잡으러 온 것”이라는 깨달음을 설파하는 것은 극의 흐름을 확실히 깬다.
고질라의 실제 일본어 발음은 ‘고지라’다. 일본어의 영어 낱말 고리라와 고래를 뜻하는 구지라라는 단어의 결합으로 유인원적인 생김과 거대한 몸집을 상징한다고 한다. 영어 표기 ‘Godzilla’에 신을 뜻하는 ‘갓(god)’이 들어가면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신적 존재처럼 자연을 컨트롤하려한다는 이론이 그럴싸해보이긴 한다.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는 이러한 일본인 박사의 사고전환이 신비로울지 몰라도 2시간여 동안 그나마 유지해온 리얼리티가 심각하게 손상된다. 고질라의 원대한 크기에 비례해 뇌도 대형이라 어느 정도 사고력을 기대해볼 순 있겠지만 고질라의 초월적 눈빛과 인간과의 교감을 나누는 듯한 표정에서는 실소가 흘러나온다. 이것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함을 버려야한다는 주제의식이 전달됐다고 생각하면 제작진의 오산이다.
우리에게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서 강혜정이 맡았던 역으로 출연해 많이 알려진 여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