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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질주 원더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회

파격 질주 원더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뉴시스 기자 입력 2014/09/11 23:07 수정 2014.09.11 23:07
한국 첫 독립야구단 전격 해체… KBO와 의견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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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가 3년 간의 짧은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더스의 행보는 서울대 야구부 출신 버클리 음대생이라는 이색 경력을 갖춘 허민 전 위메프 대표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허민 구단주는 2011년 9월“선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수익과는 거리가 먼 독립구단 창단을 택했다. 야구계에 던진 신선한 충격이었다.
원더스의 파격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총 40여명의 선수단을 꾸린 원더스는‘야신’으로 통하던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면서 주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이듬해 1월에는 일본 고지현에서 전지훈련을 갖기도 했다.
원더스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퓨처스리그 팀들과의 교류 경기로 기량을 가다듬었다. 첫 해인 2012년 20승7무21패(0.488)로 가능성을 보인 뒤 2013년에는 27승6무15패(0.643)로 반등했다.
원더스가 승승장구하자 기존 구단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2년 이희성의 LG 트윈스 입단을 시작으로 그해 5명과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총 22명의 선수들이 원더스 덕분에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어느 덧 원더스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전을 멈춰야 했던 선수들의‘재기의 장’으로 부상했다. 드래프트에서 외면받은 이들 뿐만 아니라 김수경과 최향남 등 본의 아니게 그라운드와 멀어졌던 베테랑들도 원더스의 문을 두들겼다.
당당히 한국 야구계의 한 축을 꿰찬 원더스는 11일 갑작스런 해체를 발표했다.
그동안의 기분 좋은 충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원더스는“3년간 운영하면서 창단을 제의했던 KBO와 구단 운영에 대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결과적으로 KBO는 원더스 창단 당시 내걸었던“1년 간 교류경기를 치른 뒤 다음해부터는 정상적인 스케줄에 포함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소속 구단간 경기편성의 형평성과 독립리그 설립취지, 예상 경기력 등이 반대의 이유였다.
높은 진입장벽을 확인한 원더스도 도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원더스의 해체를 두고“야구계 전체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일침했다. 그는“한국 야구가 역피라미드로 가야 한다. 위(프로)를 넓혀야 한다. 저변도 저변이지만 위를 넓혀야 산다”면서“프로 말고는 갈 자리가 없는데 저변만 넓히면 안 된다 고양 원더스는 그런 의미에서 큰 존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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