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구단주의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
지난 열흘 간 한국 축구는 한 정치인이 던진 이슈에 몸살을 앓았다. 프로축구 성남FC의 이재명 구단주가 제기한 화두에 축구계의 모든 이슈는 매몰되다시피 했다.
지난달 28일 이 구단주가 자신의 SNS에 올린 '성남, 꼴찌의 반란인가? 왕따 된 우등생인가?'라는 제목의 글에 미디어가 화답했다.
구단주의 직접적인 물음에 축구 기자들은 답했다.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부터 내용이 도를 넘어섰다는 반응까지 인터넷을 무대로 다양한 성격의 논의가 벌어졌다.
시쳇말로 '판'이 깔렸지만 무엇을 위한 판인지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판인지도 모른 채 던져진 화두에 답하느라 여념없었다. 너도나도 '축구를 위해서'라는 맹목적인 명분으로 설전을 벌였다.
그 판을 깐 장본인은 구단주이자 성남시장인 이재명, 정치인이다. 축구인 출신 성남 신문선 대표이사는 이 같은 사실에 부담을 느낀다. 오히려 축구 본연의 이슈가 이데올로기적으로 흐르면서 본질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언론에 지운다.
이는 구단주가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가리기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이 축구를 말하는 것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발화의 주체는 엄연한 정치인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구단주가 축구계를 졸지에 '비리의 온상' 내지는 '깨져야 하는 성역' 쯤으로 단정지었다. 30여 년간 키워온 프로축구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전쟁', '전면전', '선전포고' 등 정치적 수사(修辭)가 동원됐다. 성남, 또 성남과 비슷한 처지의 시·도 구단이 피해를 입은 오심 사례를 제시하면서 마치 프로축구 전체가 오염됐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힘 없고 빽 없는' 구단이 받아야 하는 설움으로 단정하면서 개혁을 이야기했다. 이 구단주는 과정에서 '민주 투사' 이미지를 얻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근거 없이 문제만 제기한 셈이다. 그나마도 지적한 오심 사례는 지난 5일 열린 프로연맹 상벌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이 구단주의 주장에서 축구를 위해 고민한 흔적은 찾기 어려워 진정성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평소 SNS에서 시정(市政)을 이야기하고 여론을 살피는 모습을 볼 때 그는 틀림없는 정치인이다.
그는 프로연맹으로부터의 상벌위 소집 결정이 나자 자신의 SNS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팬들에게 어필하고 지지받고 힘을 얻는다. 그렇게 대중영합적인 포퓰리즘을 만들어간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말 역시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발언의 책임을 물을 때에는 "단순히 SNS에 올린 글"이라고 의미를 축소한다. 프로연맹의 부패함을 탓하면서는 "감시와 비판으로 성역을 깬다"며 의미를 키운다.
문제 제기의 시점도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2부 리그로의 강등과 1부 잔류의 기로에서 판정시비와 오심논란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던졌다. 정치인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첨예한 시기에 파급력 큰 문제를 효과적으로 거론한 셈이 됐다.
이 구단주가 자신의 SNS 발언 관련 이슈에 있어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짠 프레임이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이다. 축구인도 대중도 미디어도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명한 언어학자로 '프레임 전쟁',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저서에서 '프레임 이론'을 주창한 조지 레이코프도 울고 갈 전략이다.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은 숱하게 당하기만 했던 미국 민주당의 실패한 정치 전략을 예로 든다. 공화당에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프레임을 짠 순간, 코끼리를 말하는 민주당의 패배는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 구단주는 성남 구단의 이해관계를 당위의 가치와 결부시킴으로써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견고한 '코끼리 프레임'을 완성했다.
이 구단주가 짠 프레임 안에서는 '성남=오심 피해자'라는 주장은 옅어지고 '프로연맹=개혁 대상' 이라는 공식만 남는다.
누군가 구단주를 비난하는 순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축구계를 바꾸자는 '신성한(?)' 그의 주장에 반대를 하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심판대에 오르고 적으로 간주된다.
이 구단주는 그렇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는 상벌위의 '경고' 조치도 징계여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끝까지 가겠다는 자세다. 어쩌면 이길 수 있는 게임에만 발을 담그는 능력을 타고났는지도 모를 일이다.